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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한글, 세계 보급 운동의 전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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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한글, 세계 보급 운동의 전제 조건

입력
2005.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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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글날에 한글을 다른 나라에 홍보하는 단체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아직까지 글자가 없는 민족에게 라틴문자가 아닌 한글을 보급해 그 언어를 표기하도록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재 한글은 남ㆍ북한에서만 쓰기 때문에 못 믿겠다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글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교육시켜 이용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글이 자음 소리가 부족하거나 다른 언어에 없는 발음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함일 뿐, 한글 그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로마문자도 유럽의 여러 나라가 쓴다고 해서 발음이 같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어의 Paris(파리)와 영어의 Paris를 비교해 보라.

글자는 무엇보다는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이란 사람들은 아랍글자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아랍어에 없는 ‘G’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K’ 위에 선을 하나 더 쓴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여러 언어들이 움라우트(모음 위에 있는 쌍점)를 이용해 다양한 모음을 표시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글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교육시키는 일은 단순히 글자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한글을 보급하고자 한다면 글자보다는 상품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위해 내년에 출시될 예정인 100달러짜리 노트북처럼 그대로 쓸 수 있는 상품이 필요하다.

널리 퍼져 있는 로마자처럼 한글을 확산시키고 싶다면 한글 교육과 함께 많은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컴퓨터를 쓸 때 어떻게 입력하는지, 또 해당 언어에 맞는 글꼴을 개발해야 한글을 자기 문자로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있을 때 위구르족 출신 친구가 있었다. 그 쪽 언어는 아랍문자를 쓰는데도 채팅을 할 때는 항상 로마자를 사용했다. 일본의 컴퓨터에는 아랍글자를 표기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같은 종류의 상품 두 가지 중 어느 회사의 제품을 이용할까 고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하나는 대기업이며 그 회사의 상품을 누구나 알고 있다. 다른 회사 규모는 작은 편이나 값도 싸고, 문제가 생기면 그대로 교환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만약 뒤의 회사 제품에 이 같은 단서가 없다면 그 회사의 제품은 애당초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민족이 한글을 이용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10년이나 20년 동안 외국서적을 번역해주거나 기술적인 지원 등을 통해 한국을 고맙고 친숙한 나라로 인식하게끔 해야 할 것이다.

데이비드 맥클라우드· 캐나다인· 프리랜서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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