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초 서울보증보험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국제신용평가기관(S&P)으로부터 신용등급을 받았다. 결과는 ‘A-’. 대단한 성적표였다.
“국내 최초나 최고도 아닌데 A-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적지않은 국내 기업과 은행들이 현재 이 등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서울보증보험의 사정은 다르다. 외환위기 직후 무려 10조2,500억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곳이다. 사실상의 파산 상태에서 국민의 돈을 응급으로 수혈 받았지만, 누구도 회생을 장담하지 못했다. 그런 서울보증보험이 명실상부한 ‘우량기업 보증서’인 A-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빅 뉴스임에 틀림없었다.
정기홍(60) 사장은 서울보증보험의 이 같은 도약을 이끌고 있다. 취임 첫 해인 지난해 5,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냈고, 올해는 그 이상, 내친 김에 내년에는 ‘순익 1조원 클럽’ 가입까지 바라보고 있다.
“원래는 BBB 정도를 기대했죠. 처음 받는 등급으로 A를 받기가 힘든데다, S&P에서도 공적자금 투입기관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적이 좋았고, ‘공적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한 기업 아니냐’는 점을 역으로 설득한 결과 예상보다 좋은 등급을 받게 됐습니다.”
정 사장은 사실 서울보증보험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금융감독원 출신인 정 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금감원 부원장보와 부원장을 거치며 구조조정 실무작업을 주도했다. 서울보증보험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과정을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던 그가 이 회사 사장으로 임명됐을 때, 남다른 애착과 함께 회사 정상화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직원 사기부터 살리는 것이었지요.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어깨가 너무 축 처져 있었거든요. 두 번째는 공적자금 투입기관으로서 공익성을 염두에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자는 취지였죠.”
정 사장은 수시로 직원들과 만났다. 점심도 같이하고, 술잔도 기울이고, 본점 인근 종묘공원도 함께 산책했다. 대신 인사 청탁 직원은 아예 좌천성 발령을 냄으로써 신상필벌의 선을 분명히 그었다.
“경기가 계속 나빴는데 왜 이렇게 순익이 좋아지고 있는지 저도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수익 분석을 해봤는데, 결국은 직원들이 좀 더 열심히 뛴 결과였습니다. ‘CEO가 할 일은 직원들의 흥을 돋궈주는 것이구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죠.”
지난해와 올해 ‘빅 히트’를 친 신원보증보험은 공익적 책임에서 개발한 상품이다. 신용불량의 낙인이 찍혀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신불자들에게 소액의 보증료(보증한도 1,000만원에 보증료 1만5,000원)만 받고 재정 보증을 해줌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갖도록 한 상품이다. 지난해 4월 이래 무려 5만3,000명의 신불자가 신원보증을 통해 직장을 얻게 됐다.
“신불자들을 어떻게 믿고 보증을 서주느냐고 반대도 많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 5만3,000명 가운데 보증 사고를 낸 사람은 68명에 불과합니다. 대다수 신불자들은 일할 기회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빚도 갚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갱생의 의지가 있음이 입증된 셈이지요. 신원보증보험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신불자들로부터 감사 편지와 이메일도 많이 받았습니다.”
서울보증보험은 과거 부실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 확실한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 정 사장은 앞으로의 경영 방향에 대해 “지금까지 반쪽 시장에서만 영업을 했는데, 이젠 남은 반쪽 시장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건설 및 선박수주 등 해외보증업무를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보증보험 보증서는 해외에서 별로 효력을 인정 받지 못했지만 앞으론 달라질 겁니다. S&P의 A- 등급이 우량보증서가 되는 것이지요.”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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