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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어느 여성 택시기사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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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어느 여성 택시기사의 항변

입력
2005.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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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달 전, 퇴근이 늦어져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는 30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여성이었다. 그는 껌을 씹고 있었고 운전이 좀 신경질적이었다. 내가 그에게 허튼 수작을 건 것은, 얼굴 선이 부드럽고 머리 모양도 세련돼 보였기 때문일까.

“뭣 좀 물어봐도 되겠어요?” 돌아오는 응답이 맹랑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것만 말고, 해 보시지요.” “운전을 꽤 박력 있게 하시는데, 운전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10년이 넘었는데, 너무 거칠었으면 죄송하네요.”

●'대통령 얘기는 사양합니다'

대통령 얘기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손님이 신문사 앞에서 타시길래, 또 정치 얘기를 꺼내나 하고 그랬지요. 바로 앞에 내린 손님이 억지로 말을 시키며 대통령 욕을 하길래, 한바탕 싸움을 했거든요. 경제가 이 정부 들어와서 나빠진 것도 아닌데, 고졸 대통령이라고 무시하고 막 흔드는 거죠.”

집이 멀지 않아서 곧 “얘기 잘 들었다”고 인사하고 내렸다. 논리는 거칠어도 뚜렷한 그의 주관이 여운을 주었지만, 택시기사 생활은 고단할 것 같았다.

요즘 국정브리핑에 오른 글들이 신문의 큰 시비 대상처럼 되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국민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모습을 일그러지게 하는 유리 벽이 정부와 국민 사이에 놓여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대입 본고사가 불러올 공교육의 위기에 대한 대통령의 걱정은 ‘학력 콤플렉스’를 지닌 대통령이 서울대 총장과 한판 붙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청와대 회의 대부분을 경제에 할애해도 ‘경제 챙기지 않는 정부’로 매도된다는 것이다.

갇힌 사람이 종이비행기로 구원을 요청하듯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국정 브리핑을 운영한 것인데, 신문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한 신문은 ‘언론 본연의 기능이 권력의 오ㆍ남용에 대한 감시ㆍ견제ㆍ비판’이라고 주장한다.

언론학에서 그런 대목은 발견되지 않는다. 잠깐 공부를 하자면 언론학의 체계를 세운 라스웰은 언론의 기능을 환경의 감시, 각 부분의 상관조정, 문화유산의 전달로 꼽았다. 다른 학자들이 여기에 오락 기능과 동원 역할을 추가했다. 권력 감시가 ‘환경의 감시’에 포함될 수는 있으나, 환경은 그보다 넓은 것이다.

한국의 환경은 어떤가. ‘국경 없는 기자회’가 최근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보면 167개국 중 한국은 34위로 아시아 최고였다. 44위에 오른 미국보다 10단계나 앞섰다. 한국 언론은 힘도 세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X파일 사건’으로 귀국할 때, 그 회사 기자들은 일본까지 가서 영접하고 공항에서 타사 기자들의 취재 또한 방해했다. 검찰에 출석하던 날은 사진기자가 시위대원의 목을 졸라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파사현정에 헌신해야 할 기자들이 본분은 팽개치고 사주 경호에 매달린 이 행동들은 언론사의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이다. 언론이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이냐시오 라모네의 지적대로 언론은 더 이상 제4의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프랑스 학자에 따르면 언론은 2위의 권력이다. 1위는 2위와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제이고, 정치 권력은 3위에 불과하다.

●비판의 과도화는 선정주의

마침 25일의 한 세미나에서 교수들이 한국적 보도방식을 비판했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는 “한국언론이 정치권력을 비판ㆍ감시하는 태도와 방식은 정도를 넘어 정치권력과 기와 세를 겨루는 공격형 저널리즘으로 변질돼 왔다”고 지적했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에 대한 언론비판의 과도화는 정치적 선정주의 혐의를 받게 되고, 장기적으로 언론 스스로의 신뢰와 권위에 손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대통령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농담이나 가십거리에 사사건건 정색을 하는 과잉 보도에서는 벗어날 때도 되었다. 그 점에서 그 여성 기사는 본질과 곁가지는 구분할 수 있는 소양의 소유자가 아니었나 싶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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