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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글로벌스탠더드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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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글로벌스탠더드 유감(有感)

입력
2005.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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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스탠더드(Global Standard)’로 포장된 가치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에서부터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과정에 관한 논란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마치 ‘글로벌스탠더드’ 강박관념에라도 사로잡힌 것 같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부상한 ‘글로벌스탠더드’는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절대적 가치일까.

일본은 최근 자국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무차별적인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해당 기업 주주의 50% 이상이 동의할 때만 인수가 가능토록 법제를 추진했다.

6월 발표된 ‘회사법제현대화법’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이 조치에서 논란의 핵심은 ‘50% 이상’의 기준이 의결권이 아닌 주주수라는 점. 전문가들은 다수의 소액주주로 구성된 일본 기업의 특성상, 이 조치는 일본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적대적 M&A를 사실상 봉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극도로 예외적인 해법(super extraordinary resolution)’으로 즉각 규정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앞세워 “이번 조치는 2003년 고이즈미 총리가 외국인 투자규제를 풀어 2008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를 배로 늘리겠다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는 비판을 폈다.

일본의 조치가 ‘주주의 의결권은 보유 지분에 의거해야 한다’거나, ‘투자시장은 개방돼야 한다’는 등의 ‘글로벌스탠더드’를 위배했다는 점을 애써 환기한 셈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FT의 논리는 허구이다.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미국은 이미 유사시 인수인을 제외한 기존주주에게 저가의 신주 할인매입권을 부여하는 독약조항(Poison Pill)을 허용하고 있다.

또 스웨덴은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의결권을 차등 부여해 에릭슨 대주주의 경우 3.5%의 지분으로 22.3%의 합법적인 의결권을 행사토록 했다. ‘글로벌스탠더드’의 원산지들조차 교조적인 ‘글로벌스탠더드’를 넘어 유연한 ‘현실주의’를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비판을 무릅쓴 일본의 현실주의적 선택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국회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초 금산법은 금융산업과 제조업의 엄격한 소유분리를 특징으로 한 미국식 법제를 이식해 추진됐다.

그런데 여기에 이른바 ‘주주 민주주의론’와 기업지배구조개선론까지 ‘글로벌스탠더드’로 포장돼 무질서하게 뒤섞이면서 극히 관념적인 ‘삼성 때리기’ 공방전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삼성 개혁이든 재벌 개혁이든, 문제는 우리 기업의 효율성과 장기 성장 가능성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에 논의가 맞춰져야 했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더드’로 포장된 관념론이 판치면서 현실주의는 급격히 소멸됐다. 가까스로 모아진 여당의 당론이라는 것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5% 초과지분에 대한 ‘분리 대응’이라는 어정쩡한 타협으로 귀결된 것도 따지고 보면 현실주의의 매몰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난자 매매’와 관련한 최근 논란의 중심에도 ‘글로벌스탠더드’에 대한 교조적인 맹신이 자리잡고 있다. MBC ‘PD수첩’이 황 교수팀에 대해 파헤쳤다는 것은 ‘황 박사팀이 윤리규정을 어기고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 난자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윤리(Global Ethics)’라고 표현되는 이 가치의 근거는 ‘헬싱키선언’(1964년)과 ‘국제임상시험윤리규정’(1996년) 정도이다. 이 두 선언적 규정이 황 교수에게 ‘혐의’를 물을 수 있는 ‘글로벌스탠더드’가 된 셈이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볼 때, 황 교수와 그의 연구과정 전체가 과연 비윤리적이라고 매도될 만한 것이었을까. 물론 ‘실수’의 정황은 곳곳에 발견된다. 하지만 황 박사가 폭로의 대상으로 전락할 정도로 우리 식의 ‘인륜’까지 어겼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글로벌스탠더드’는 존중될 필요가 있지만, 유연한 소화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장인철 국제부 차장대우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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