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어디까지 가야만 양국 관계자들이 정신을 차릴 것인가. 아소 타로 일본 외무장관의 발언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한중 양국의 반발을 불러 아시아에서 일본의 고립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야스쿠니 문제를 얘기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 뿐”이라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일본 외교당국자의 말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의 개인적 역사인식은 일본 보수 정치권에서도 두드러진 것이어서 외무장관 기용 자체가 적잖은 우려를 불렀다. 그래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상식으로 보아 외무장관으로서는 최소한의 절제를 보여주리라 여겼다. 그런 예상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우리는 외교 상식을 무시한 그의 언행에 커다란 우려와 분노를 느낀다. 양국 관계가 어려울수록 외교 당국자는 상대국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데도 그는 이런 최소한의 요구를 무시했다.
한편으로 그의 발언이 체념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의 자세 또한 되돌아보게 된다. 그는 아태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과의 대화를 모색했으나 냉랭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다. 해결 가능성이 희박한 문제와 마주치면 자기정당화를 위해 문제를 떠넘기기 쉽다.
올 들어 한국 정부가 대일 비난 공세를 강화하고, 중국이 맞장구를 치는 상황이 이어졌다. 애초에 중일 사이의 매개자ㆍ균형추 역할을 맡을 수 있었을 한국이 대일 공세에 앞장섬으로써 그런 지위를 잃어 버렸다. 물론 양국 정부의 관계와는 별도로 민간 관계는 여전히 탄탄하다. 그러나 경제ㆍ민간 교류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악화한 양국 외교관계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한일 양국 정부의 절제와 지혜가 요구된다. 양국의 장기적 신경전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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