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는 빨리 연구실로 돌아와야 한다.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던 지난 24일의 참담한 기자회견에서 그는 “모든 공직뿐 아니라 연구직에서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지만 국민의 성원과 난치병 환자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과학도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황 박사나 그의 연구팀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의 업적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과 기대가 컸던 만큼, 또 황우석이라는 과학자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깊었던 만큼, 충격이 엄청났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국민을 안심시켜 오던 그가 거짓말을 고백하는 순간 국민은 실망과 안타까움에 휩싸였다.
국가가 받은 상처도 크다. 한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함께 드러냈다. 근면함 창의성 도전정신 등 뛰어난 장점들로 여러 부문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지만, 부정부패와 폭력성 등 단점들도 부각됐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여러모로 신뢰할 만한 나라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일류국가로 갈 수 없고, 진정한 친구를 얻기도 어렵다. 황우석 사태는 바로 그 취약점을 때렸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 과학자의 거짓말이 세계의 핫뉴스로 터졌을 때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은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한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국가 이미지의 추락이다. 그것은 단순히 줄기세포 연구에 미칠 손실만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인의 거짓말과 과학자의 거짓말은 다르다.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물며 생명의 영역을 다루는 과학자가 거짓말을 한다면 윤리적인 논란을 어떻게 헤쳐나가겠는가. 누가 그의 말을 믿고 성원을 보내겠는가.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황 박사의 거짓말이 연구의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고,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난자를 제공한 연구원들이나 그 사실을 숨기려 했던 황 박사의 행동이 모두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 한 가닥 위안을 준다.
황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여자였다면 나의 난자를 뽑아 실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난자를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고자 했던 연구원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한 연구원은 “줄기세포 연구를 성공시켜 불치병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연구원 난자 제공이 의사들의 윤리 선언인 헬싱키 선언에 위배될 수 있음을 알게 된 연구팀은 공식적으로 그 사실을 부인했다. 연구원들은 ‘네이처’지 기자에게 난자 제공을 시인했다가 영어 미숙으로 뜻이 잘못 전달됐다고 부인했고, 연구원들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요청하자 황 박사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작년 5월의 일이다.
황 박사는 1년 6개월 만에 진실을 고백하면서 “그때 사실을 털어놓아 국제적 눈높이에 맞춰야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 눈앞의 연구와 성취 이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고 후회했다.
한국식으로 대응하다가 국제적인 윤리 기준을 놓쳤다는 지적이 많지만, 황 교수팀의 처사는 한국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거짓말은 우리 문화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며, 섣부른 미담이 윤리에 우선할 수는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분명하게 사리를 판단하는 우리의 양식 속에 세계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고백하는 황 박사의 기자회견은 진솔함으로 감동을 주었다. 인정사정 없이 취재원을 좇는 사진기자들은 그가 회견장을 떠날 때 “따라가지 말자. 따라가지 말자”고 외치며 그가 조용히 퇴장하도록 배려했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가 다시 등장할 길을 열어놓는 따듯한 배려였다.
많은 한국인들의 우상이고 살아 있는 신화였던 황우석, 무엇보다 불치병 환자들에게 간절한 희망의 등불이었던 황우석은 지금 앓고 있다. 그가 하루빨리 상처에서 벗어나기를 온 국민이 빌고 있다.
그의 연구를 법적ㆍ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고, 난자 기증을 자원하는 여성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자신과 나라에 끼친 불명예를 연구와 업적으로 갚아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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