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의 위헌 논란이 24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일단락 됨에 따라 수도권 소재 176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내용으로 한 정부의 ‘혁신도시’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하지만 지난 6월 11개 시ㆍ도별 이전 기관이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달까지 전북 광주 전남 경남 등 4개 시ㆍ도만이 혁신도시 입지 선정을 마무리했을 뿐 나머지 시ㆍ도에서는 지자체간, 지자체와 이전기관간의 갈등 때문에 차일피일 일정이 미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혁신도시 선정이 끝난 경남과 전북에서는 탈락한 지자체의 주민 반발이 커지는가 하면 벌써부터 부동산투기 바람까지 부는 등 혁신도시의 난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이전기관-지자체 갈등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15개 공공기관이 이전할 충북 혁신도시의 입지 선정이 하염없이 지체되고 있다. 아직까지 세부평가 기준마저 확정하지 못해 정부가 최종 시한으로 잡은 이달 말도 사실상 물건너 갔다.
선정 작업이 난항을 겪는 이유는 충북도와 이전기관들과의 의견 대립. 이전기관들은 여건이 좋은 청주권역으로 옮겨 오기를 내심 희망하고 있는데 비해 충북도는 균형 발전을 내세워 청주권을 입지에서 배제하겠다는 속내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달 충북도가 추천한 2명의 입지선정 위원이 속한 시민단체가 ‘균형발전을 위해 청주권은 혁신도시 후보지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전기관협의회 측이 즉각 이들의 해촉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입지선정위원회 활동이 한 달 이상 중단되기도 했다.
강원도의 경우 최근 김진선 지사가 공정성 논란 등을 이유로 입지선정위원 20명을 모두 해촉하고 연고가 없는 새로운 위원을 위촉하는 등 혁신도시를 둘러싼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이러한 도의 움직임을 놓고 이전대상 기관들이 “도지사가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무시했다” 며 “최악의 경우 강원도행을 재고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살아나는 형국이다.
경남도는 지난달 31일 도내 이전이 결정된 12개 공공기관 중 9개 기관이 이전할 혁신도시로 진주시 문산읍 소문지구를, 대한주택공사 등 주택건설기능군의 3개 공공기관 개별이전 지역으로 마산시 회성동지구를 선정 발표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경남도의 선정은 정부가 정한 원칙과 기준, 절차를 위반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마찰을 빚고 있다.
전북도는 지난 10월27일 완주군 이서면과 전주시 만성동 일대를 전국에서 가장 빨리 예정지로 발표했지만 탈락한 지자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접근성이 좋고 기존 도시 인프라와 편의시설을 활용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완주군 이서면 일대의 혁신도시 선정에 대해 익산ㆍ정읍ㆍ남원시는 최근 성명을 통해 “혁신도시 입지로 전주 인근지역이 선정된 것은 균형 발전을 외면한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어 익산시는 혁신도시 재평가 및 선정위원 전원 교체 등을 도에 요구했고 채규정 익산시장과 주민들이 삭발항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도공 등 13개 기관의 이전이 결정된 경북도의 입지선정 스케줄도 당초 9월말에서 11월말까지 3차례나 밀리는 등 난관을 겪었다. 도는 23개 시ㆍ군 중 20곳이나 유치를 신청, 치열한 경쟁으로 일러야 내달 중순께나 선정작업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도 관계자는 “처음부터 지역산업 연관성이나 효율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시ㆍ도 배치를 하다 보니 입지선정이 어렵게 됐고,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려 어느 곳이 선정되든 탈락한 지역의 반발이 극심할 것으로 보여 지역사회 분열의 심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광주ㆍ전남 등 순조로운 진행
전국에서 유일하게 공동 혁신도시를 건설키로 한 광주시와 전남도는 17일 나주시 금천ㆍ산포ㆍ봉황면 일대를 혁신도시 후보지로 최종 선정했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는 지난 6월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이 확정된 직후 광주ㆍ전남의 상생을 위해 두 지역에 이전하는 한전 등 18개 공공기관을 광주와 인접한 전남지역 시ㆍ군 한 곳에 건설키로 합의한 뒤 입지선정작업을 해와 타 시ㆍ도와 달리 무난하게 선정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지역으로 이전할 공공기관을 한 곳에서 수용하다 보니 이로 인한 개발비용 증가가 부담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새로운 도시기반시설 및 사회간접자본 등에 들어갈 개발비용 1,600억여원을 정부에 지원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부산도 혁신도시 선정과 관련 이전대상 공공기관 직원들의 공동주거지 선정 문제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다. 시는 지난 8월 5일 이전기관과의 간담회, 8월 18일 기관 노조협의회와 간담회를 가진 이후 그 동안 모두 4차례 입지위원회를 갖고 이전 대상기관을 기능군갬?3~4곳에 분산 배치하는 방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다.
■ 선정지 주민들 "보상 더 받자" 논밭 엎고 유실수 심기 '분주'
비닐하우스도 마구 생겨 투기 조짐
혁신도시로 선정된 경남 진주, 전북 완주에선 논밭을 갈아 유실수를 심고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등 보상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한 농민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일대는 최근 멀쩡한 전답들이 중장비 굉음 아래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과, 배, 감 등 각종 유실수 ‘밭’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주민 이모(62)씨는 “혁신도시가 만들어질 때 유실수들이 많으면 토지보상 가격이 올라간다는 말에 나무를 심기에 좋지 않은 토양이지만 묘목들을 사다 심고 있다” 며 “수령이 많은 나무일수록 이전비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해 15년 생 이상 유실수들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비닐하우스로 농작을 하면 수년 뒤 작물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쏠쏠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혁신도시 선정지 주변에 비닐하우스들이 늘고 있다.
진주시 문산읍에 사는 한 주민은 “한 채당 8,000만원 정도가 드는 900평 짜리 비닐하우스를 지어놓으면 땅을 보상 받을 때쯤 기르고 1억원 이상 건질 수 있다고 해 주변 농민들이 비닐하우스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투기’ 움직임에 대해 경남도 관계자는 “보상을 노린 행위는 이후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보상금을 주지 않도록 결정하게 돼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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