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출장이 잦은 회사원 정모(39)씨는 올 9월 충북 제천의 왕복2차선 도로를 운전하다 사고를 당했다. 맞은편 차량의 강한 전조등 불빛이 눈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 급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바깥쪽으로 돌리면서 자동차는 논두렁에 빠지고 말았다. 정씨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며 “자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상대방 운전자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동차를 개조해 개성을 뽐내려는 20, 30대 운전자들 사이에 가스방전식전조등(HID램프) 장착이 유행하면서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HID램프는 2만볼트 이상의 고압으로 방전해 빛을 내는 고광원 전구로 필라멘트를 이용해 노란 빛을 내는 일반 전구보다 2배 이상 밝다. 서울 역삼동의 한 튜닝전문점 대표 이모(42)씨는 “가격이 20만~40만원 정도로 비싸지 않으면서도 화려하게 보이기 때문에 하루에 4, 5세트가 꾸준히 팔린다”고 말했다.
자동차관리법 상 이미 출고된 자동차의 라이트를 HID램프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무게에 따라 전조등의 높낮이가 바뀌는 자동광축조절장치를 함께 설치해야 한다. HID램프는 뒷좌석에 사람이 탔을 경우 전조등이 위를 향하게 돼 반대편 운전자의 눈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안과의사협회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HID램프를 장착한 차량은 상대방 운전자의 시야를 좁게 해 사고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자동광축조절장치는 가격이 수백만원에 달해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HID램프만 불법 장착하고 있다.
업체나 운전자들은 HID램프의 위험성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서울 장안동의 S사 대표 김모(45)씨는 “몇 년 동안 HID램프만 교체해 줬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며 의아해 했다. 지난해 HID램프를 장착한 회사원 박모(30)씨도 “자동차 정기검사 때도 무사히 통과됐다”고 말했다.
HID램프 장착은 다른 운전자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 교통안전관리공단 강병도 책임연구원은 “강한 빛을 내기 위해 전조등에 과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차내 전력공급에 불균형이 생겨 운행 중 시동이 꺼지거나 심지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강남자동차검사소 관계자는 “라이트만 바꾼다고 가볍게 여겨서는 큰 일”이라며 반드시 구조변경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당국의 허술한 관리 체계와 단속 실태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지나치게 밝고 품질은 떨어지는 중국산 HID램프가 시중에 많지만 안전기준은 없다”고 지적했다. 자동차10년타기운동본부 임기상 대표는 “감독기관이 불법 개조 라이트를 단속할 수 없다고 방치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글ㆍ사진=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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