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혐한류(嫌韓流)가 사이버 세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웹사이트와 블로그에는 한국인을 비하하고 모멸하는 글이 갈수록 쏟아지고 있다. 일본의 인터넷에서 혐한류는 이제 커다란 흐름이 됐다. 극우 정치인이나 산케이(産經)신문 등 보수 언론의 영향력이 도리어 왜소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한국인들은 미키마우스와 스타워즈, 그리고 갖가지 종교의 기원이 자기들이라고 떠드는 놈들이다”(ID:Ae1YfXRp)
“알면 알수록 싫어지는 역사 날조국 한국,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보채는 거지나라 북한”(ID:WKr+0A9)
“한국인과 일을 같이 한 이후 인간 불신자가 됐고, ‘최악’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됐다”(ID:pT9TLu2B)….
반복되는 메시지는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이 이룬 것이고 ▦한국의 일본 따라 하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런데도 일본보고 사과하라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논지에 불을 붙인 것은 ‘만화 혐한류’다. 반한감정에 관한한 일본에서는 만화와 인터넷 등 대안(代案) 매체가 기존의 주류 매체를 제치고 전파의 주 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혐한의 진앙지는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이다. 대표적 익명 게시판인 ‘2채널’에는 ‘한글’ ‘극동아시아 뉴스’ ‘기혼여성’ 등을 문패로 한 게시판에 혐한의 글들이 몰리고 있다.
각각의 주제는 또다시 수백개의 소주제로 나뉘기 때문에 혐한 내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야후 재팬’‘라이브도어’등 대형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도 혐한의 글이 부쩍 많아졌다. 최근에는 개인 블로그로 그 불길이 옮겨 가고 있는 중이다.
혐한론자들의 대표적 레퍼토리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들에게 ‘일본 천황가는 한국계’라고 우기는 한국은 과대망상 국가이다. ‘한국합병을 통해 근대화를 선물한 일본의 공로’를 무시하고, ‘있지도 않은 종군위안부를 앞세워 보상을 요구하는’한국은 은혜를 모르는 나라이며, 역사 날조국이다.
한국은 또 ‘월드컵에서 심판을 매수하고, 일본의 월드컵 단독 개최를 돈으로 강탈한’불량 국가이며, ‘반일을 외치면서도 일본 제품이라면 어쩔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나라이다. 이들은 또 한국인에 대해서도 ‘거짓말 잘하고 지저분하며 뻔뻔스러운 사람들’등으로 일반화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들의 분노가 일본의 기성 정치권에게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글들은 ‘한일 우호를 지나치게 의식해 저자세 외교로 일관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들에 대한 울분과 네티즌들의 공격을 선동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편견과 오류, 단편적인 사실 등을 바탕으로 생성되고 있는 이 같은 혐한 감정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인터넷 속성상 혐한 감정이 과거에 비해 커진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공개 비판을 꺼리는 풍토를 가진 일본에서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숨어서 본심을 털어 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혐한류의 메시지가 제도권 정책 변화를 겨냥해 체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혐한 활동은 ‘네트(net) 우익(右翼)’이라고 불리는 우익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데 최근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일본의 젊은 차세대 주자들의 성향이 보수적인 것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한국 온라인에서는 정반대로 반일색채가 뚜렷해지고 있어 한일 젊은 세대들의 갈등, 미래의 양국관계를 염려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광호(李光鎬) 도쿄공과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한국인들의 반일감정도 과격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상승작용에 의한 악순환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서로간에 흥분보다는 냉철하게 관찰, 분석하는 이해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 '만화 혐한류' 30만부 이상 팔려
일본인들의 극단적인 혐한 감정을 표출한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링 지음)는 7월 출간된 이후 30만 부 이상 팔렸다.
이 책은 오랫동안 우익 세력을 주축으로 한 혐한론자들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올려 온 글 등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온라인 보급 운동에 힘입어 책은 날개 달린 듯 팔렸다.
민감한 내용 때문에 고민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던 출판사측이 이 책을 판매하기로 결정하자 ‘2채널’등 대규모 익명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이를 알리며 구매를 호소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얻어 이 책은 온라인 서점인 일본 아마존에서 예약판매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혐한론자들은 이 책에 대한 한국과 일본 언론들의 비판도 적절하게 활용했다. 한국 언론의 비판기사를 인터넷 상에 소개하며 일본인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을 일본 언론들이 철저하게 무시한 것도 판매에는 플러스가 됐다.
요미우리(讀賣)신문과 아사히(朝日)신문 등 주요 언론들은 이 책의 내용을 문제 삼아 광고와 서평 게재를 거부했다. 특히 아사히신문의 경우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포함되자 베스트셀러 표를 누락시키는 등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자 혐한론자들은 이를 인터넷 게시판에서 쟁점화시키며 판매로 연결시켰다. 이들은 “한국의 눈치를 보는 일본의 주류 언론들이 서로 짜고 한국의 치부에 대한 보도를 보이코트하고 있다”고 몰아붙였고, 이는 네티즌 가운데 반향을 일으켰다.
출판 후 개인 블로그와 인터넷 게시판을 이 책에 대한 반론과 이에 대한 재반론으로 들끓게 만든 것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도쿄=김철훈특파원
■ 혐한류의 뿌리는
일본인들의 혐한 감정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그러나 ‘혐한’이라는 말 자체는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보수ㆍ우익 계통의 언론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며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은 천황의 애매한 수사를 비난하며 확실한 ‘사죄와 보상’을 다시 요구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일본 국민 사이에서 반발이 확산했고, 얼마 안 있어 보수ㆍ우익 언론에 ‘혐한’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들의 불만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언제까지 일본이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천황의 말씀을 어떻게 그렇게 정면으로 부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혐한론이 우익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황에 대한 무례’라는 인식이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의 혐한 감정은 오래 전부터 출판물 등에 의해 명맥을 이어왔지만, 인터넷이 대중매체로 사용되면서 다른 차원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익세력들은 인터넷 상의 익명게시판 등을 통해 혐한 감정을 전파하기 위해 맹렬한 활동을 펼쳤다. 한국에서는 진보세력이 인터넷 홍보에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정보를 직접 습득할 수 있게 된 일본인들은 한국 내에서의 과격한 반일감정을 접하며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서 혐한에 동조하는 경우도 많다. 우익세력이 웹사이트에 일장기를 불태우는 등 한국인들의 과격한 시위 행태를 집중 전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혐한의 또 다른 기폭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지금도 야후 재팬에서 ‘혐한+월드컵’을 찾으면 39만5,000건이 검색될 정도로 ‘월드컵 혐한’은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도쿄=김철훈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