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얼마 전 제 교복 바지 중 하나를 줄여 쫄바지로 만들었다. 그게 요즘 유행인가 보다. 그러나 아무리 유행이 변해도 두개의 바짓가랑이를 하나로 줄이거나 세 개로 늘이지는 못한다. 애꿎은 바짓가랑이만 넓혔다 좁혔다, 늘였다 줄였다, 또 벨트라인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정도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다. 바짓가랑이가 얌전한 것은 10인치, 보통 12인치, 때로는 14인치까지 늘여 입기도 했다.
선생님들도 “이놈들아. 바짓가랑이로 동네 쓸 일이 있냐”시며 교문에 지켜 서서 단속했다. 그러면 우리는 또 행인들의 시선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교문 앞 골목에서 바지를 벗어 안으로 삐침과 스테이플러를 교묘하게 박아 선생님들의 눈을 속이곤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것은 열아홉 살 적 나의 코르덴 바지였다. 어머니는 내가 그 바지를 입고 동네 길바닥을 쓸고 다니는 걸 너무도 보기 싫어해 어느날 그것을 뚝 잘라 나와 내 동생의 베갯잇으로 만들어버렸다. 정말 무정도 하시지. 친구들 사이에 뻐김과도 같았던 대망의 14인치 바지가 단 한번의 가위질로 베개로 변신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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