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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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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고?

입력
2005.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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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은 조상들의 생활에서 우러난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속담은 후세가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애초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속담은 처음 뜻이 엉뚱하게 변질된 예 중의 하나다.

이 속담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부수적인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 즉 일거양득(一擧兩得)이나 ‘꿩 먹고 알 먹기’와 같은 의미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 뜻은 앞뒤가 잘못된 일 처리를 두고 나온 말이다.

가재를 잡으려면 시냇물이 맑은 상태라야 되는데 도랑 친다고 흙탕물을 만들어놓고서는 가재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가재를 잡고 도랑을 쳐야 하는데 앞뒤 순서가 잘못돼 일을 그르치게 됐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선의의 정책도 흙탕물에 빚 잃어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 이어지는 혼란상을 보면 이 속담이 떠오른다. 과거사를 바로 잡고, 온갖 분야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개혁을 통해 새로운 정의를 세우면서 동시에 경제를 회생시켜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앞당기겠다는 뜻은 그럴 싸 한데 일의 순서가 꼭 도랑치고 가재 잡는 셈이 되고 만 듯하다. 최종 판정을 내릴 시점은 아니지만 참여정부가 가열차게 추진해온 정책들은 어느 것 하나 제 자리를 잡은 것 같지 않다.

경제를 활성화시켜 국민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가재 잡는 것일 터인데, 도랑 친다고 흙탕물을 만들어놓았으니 가재가 잡힐 턱이 없다. 도랑 친다고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 바람에 편가르기가 기승을 부리고, 국론은 갈라지고, 갈등과 반목만 키워 놓은 꼴이 되었다.

온 나라를 소모적 논쟁으로 몰아넣은 신행정수도 건설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마무리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표를 좇는 정치권과 이해관계가 얽힌 지자체들의 움직임에 따라 논란의 불길에 휩싸일 여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쯤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법한데 여전히 도랑 치며 물길 바로 잡는다고 야단이다. 빈부격차 해소, 지역 불균형 완화, 부동산투기 추방 등 선의의 대책들도 흙탕물 속에 묻혀 빛을 잃고 있다. 흙탕물이 된 냇가는 미꾸라지들만 설치는 무대가 된 느낌이다.

후세에 내려오면서 입장이 뒤바뀐 속담도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은 힘 있는 사람들 싸우는 틈에 끼어 엉뚱한 피해를 입는다는 뜻으로 일반화했다.

역사적으로 왕족들이나 관리들 싸움에 백성만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바뀐 것 같은데 원작은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다. 새우가 싸울 때 얼마나 요란하게 싸우는지 그 넓은 고래 등이 터질 정도라는 비유에서 나왔다.

고래가 되었든 새우가 되었든 지독한 싸움에 국민의 등이 터지는 것만은 확실하다. 힘없는 민초를 상징하려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져야 할 것 같고, 싸움의 격렬함으로 말하면 새우 싸움에 고래 등이 터져야 할 것 같다. 싸움의 주인공들이 고래처럼 힘이 있는 데다 격렬하기가 새우 같으니 참 우리 국민은 억세게도 운이 없는가 보다.

국민이 어디에 비유되든 이 정권 들어 격렬해진 이념공방과 집권을 위한 정쟁,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힘겨룸에 이미 국민의 등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실정과 정쟁에 등 터지는 국민

순서가 잘못된 국정이나 심각한 국론 분열, 격렬한 정쟁이 단지 정치 실패로 끝나면 다행인데 지금 사정은 그렇지 않다. 도무지 일자리가 늘지 않아 젊은이들은 금쪽 같은 시간을 허송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직장을 쫓겨나고 있다.

중산층은 붕괴되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국민 대부분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힘을 비축ㆍ배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청와대에선 “선진국이 아닌 증거가 없는데 우리는 아직도 ‘선진국으로 들어가야 한다’ ‘선진국이냐 아니냐 갈림길에 있다’고 말한다”며 ‘통념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는 판이다.

정작 ‘통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사람은 대통령 주변 사람들과 집권 여당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식구들끼리 인터넷 댓글이나 주고받는 모습은 국민을 받드는 정권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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