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시절 안기부가 김영삼 대통령과 집권당인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의 통화까지 도청하다가 김 대통령에게 발각돼 홍역을 치른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김 대통령은 강 총장과 통화를 하던 중 잡음이 들려 호통을 쳤고, 이에 유선 도청을 하던 안기부 관계자가 놀라 전화선을 끊는 바람에 김 대통령의 통화가 끊기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다음은 민주계 중진이 이날 공개한 충격적인 안기부의 현직 대통령 도청사건의 전모다.
“YS는 대통령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당 사무총장으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특히 ‘정치적 부자지간’으로 통했던 강 총장과는 무척 자주 통화를 했다. 어느날 YS는 평소대로 강 총장의 전화를 받았다. 강 총장은 당무 등 일상적 상황보고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전화음이 낮아졌고 YS는 전화잡음 때문에 강 총장의 얘기가 잘 안 들렸다. 오랜 야당 시절 도청공포증에 시달렸던 YS는 순간적으로 ‘도청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 큰 소리로 ‘누고(누구야)’라고 고함을 질렀다. 김 대통령의 호통과 동시에 전화가 끊어졌다. 대통령이 집권당 사무총장과 나눈 내밀한 통화마저 도청되고 또 도청이 발각되자 전화가 끊기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 민주계 중진이 전한 그 이후 상황은 더욱 충격적이다.
“강 총장은 뭔가 짐작되는 게 있어 이튿날 안기부 고위관계자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너희들 이런 식으로 할거야. 어디라고 함부로 대통령 전화에 손을 대. 각하께서 진노하셔서 고함을 지르시게 하지를 않나, 전화를 끊지않나. 이런 식으로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강 총장의 전화에 안기부는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당시 안기부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야당에서 몰래 도청을 했을지 모르니 당사 전체를 조사해보겠다”고 둘러댔다.
며칠 뒤 안기부 직원들이 엄청난 크기의 도청감시장비를 가져와 여의도 극동빌딩 1~7층을 쓴 신한국당 당사를 샅샅이 뒤지는 시늉을 했다. 물론 강 총장 사무실도 뒤졌다. 도청장비는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강 총장은 안기부가 쇼를 하는 것으로 판단, 보좌진 등에게 은밀히 조사를 시켰다.
그 결과 상상하기 힘든 비밀이 드러났다. 안기부가 당사 바로 위층인 극동빌딩 8층을 통째로 빌려 비밀사무실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안기부는 8층의 비밀 사무실에서 신한국당에서 사용하는 유선전화를 모두 도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 총장은 안기부에 시정을 요구했고 그때서야 안기부는 마지못해 사후 조치에 들어갔다. 그러나 안기부는 강 총장의 폐쇄요구에도 불구하고 8층 안기부 비밀사무실의 규모만 축소했을 뿐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다.
당시 안기부의 도청은 당직자, 기자실 등 거의 모든 사무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당직자들은 도청을 의식, 유선전화는 아예 쓰지않았고 부득이한 경우 바로 감지되는 직통전화 대신 교환전화를 썼다고 한다.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여당 당직자들은 운전기사나 여동생의 친구 등 제3자 명의로 2~3대를 사용했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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