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인간들, 사람 좀 괴롭히지 마라. 샤프를 훔쳐가고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자는데 먼지 묻은 과자를 입에 넣고…. 내가 만약 귀신이 되면 너그는(너희는) 다 주겨(죽여) 버린다.”(2002년 4월19일 경남 마산시 15세 A군 유서)
#“친구 하나 없고, 난 너무 바보인가 보다. 멸시 받는 것이 내 운명인가 보다. 마음 속엔 언제나 증오의 감정과 상처뿐이다. 이 속에서 헤어 나기란 목숨을 끊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올해 1월15일 경기 안산시 18세 B군 일기)
#“학교 복도에서 아니면 다른 데서 만나면 꼭 어떤 애는 욕을 한다. 막 때리기도 한다. 날 흉보기도 하고, 그 애가 협박도 했다. 오늘만이라도 학교 가기가 싫다. 이 세상 모든 게 싫다.”(올해 4월27일 부산 동래군 12세 C양 일기)
#“심심하면 시비 걸고, 맞아주고 욕 들어야 하고, 죽고 싶다. 모든 것이 무섭게 보인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 죽으면 이런 고통은 없겠지, 춥다.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올해 10월5일 경기 시흥시 17세 D양 유서)
아이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글을 남겼다. 아이들이 죽음으로 고발하려 했던 것은 지긋지긋한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이었다. ‘유서’라고 애써 적은 뒤 부모님께 “미안해요. 사랑해요”라고 정성스럽게 쓴 글, 깨알 같은 글씨들, 곳곳에 보이는 볼펜으로 지운 자국들은 이들의 마지막 고통을 짐작케 해준다.
경찰청은 25일 ‘배움터지킴이(옛 스쿨폴리스) 워크숍’ 자료집을 배포했다. 폭력과 따돌림에 괴로워하다 자살을 택해야 했던 아이들의 유서와 일기 5편이 소개돼 있다. 맞춤법도 틀리고 더러 욕설도 있지만 그 짧은 유서엔 아이들이 세상에 있을 때 느꼈을 분노와 외로움이 오롯이 녹아 있다.
살아남은 자는 뒤늦게 아이들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접하고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고1 때부터 3년 동안 혀가 짧은 소리를 하고 말을 더듬는다고 놀림을 당하다가 자살한 B군(위의 유서 참조)의 어머니는 숨진 아들의 일기를 접하고 이렇게 적었다.
“아들이 떠난 뒤에야 아들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일기장을 두 번, 세 번 읽어 보았습니다. 가슴을 칠 노릇이었습니다. 또 몇 권의 다른 공책에서는 저희 소중한 아들을 희롱하는 듯한 심한 낙서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제발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주세요.”
하지만 희생된 아이들의 마지막 외침과 살아남은 부모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은 여전히 교육현장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자료집엔 “난로에 달군 칼로 손등을 지지고 담뱃불로 혀를 지졌습니다(중3 남학생)” “겨울마다 고구마장사를 시켰습니다(고1 남학생)” “선배의 말에 속아 제주도로 팔려와 몸을 팔고 있습니다. 소주가 없으면 잠이 안 옵니다(고1 여학생)” 등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당한 아이들의 애절한 사연도 담겨 있다.
경찰청은 전국의 71개 학교에서 학교폭력 예방활동을 하는 배움터지킴이를 상대로 26~27일 충북 충주시 수안보에서 아이들의 유서 등을 참고 자료로 삼아 워크숍을 개최한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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