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출신의 정통 월스트리트 금융맨으로 출발해 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직에까지 올랐던 로버트 루빈(사진). 그는 미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강한 달러정책으로 막고 1990년대 미국의 최장기 호황을 이끌어 ‘루비노믹스’라는 신생어까지 만들어냈다.
현재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시티그룹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루빈이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 제이콥 와이스버그와 함께 지난해 펴낸 회고록이 번역돼 나왔다.
그는 93년 1월부터 6년 반 동안 백악관 국가경제협의회 의장과 재무장관으로 일하며 세계경제를 쥐락펴락 했던 경험을 충실히 기록했다. 특히 ‘벼랑 끝에 몰린 세계’라는 단락에선 한국에 닥친 외환위기를 수습하려 긴박하게 움직이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한국이 부도위기에 빠지면서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우려가 대두된 97년 11월 하순, 집에서 추수감사절 휴가를 즐기던 루빈은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긴급 전화회의에 들어갔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 외교정책 담당자들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우려, 한국에 대한 신속한 금융지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루빈의 생각은 달랐다. “나의 강력한 소신은 경제적 안정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지정학적 목표도 성취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루빈은 김영삼 정부를 상대로 ‘관치금융’의 철폐 등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으나, 한국 관료들은 그 방향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루빈은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전화로 대책을 논의하면서 “한국 정보당국이 통화내용을 도청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 루빈이 계속 버티자 한국 정부는 결국 금융기관 및 재벌 개혁과 고금리정책 등 IMF의 강도 높은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탄핵으로 집무가 정지됐을 때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내용 요약 보고서까지 올리며 필독을 권했던 책이다.
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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