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가설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말과 일본어의 음운 대응 사례를 거의 모두 모아 놓았으니, 이 책을 보면 두 나라 말이 얼마나 비슷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김세택(67)씨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1999년 일본 오사카(大阪) 총영사를 마지막으로 36년 동안 세계 각지의 해외공관에서 근무한 전직 외교관이다. 싱가포르와 덴마크 대사를 지냈고, 국내에서는 조약심의관, 국제기구 조약국장, 외교안보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외교관이면 으레” 언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고도 하지만 그는 훨씬 특별하다. 오로지 혼자서, 20여 년 동안 우리말에서 바뀐 일본말을 하나하나 모아 사전식으로 편집한 ‘일본말 속의 한국말’(기파랑 발행)을 내는 것은 관심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일본생활에서 일본어의 뿌리가 한국어임을 체험”하고 그것을 단어 하나하나에서 정확하게 확인하려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책은 일본 고유어 가운데 한국어와 연관성이 있는 말을 골라 일본어 표기인 가나의 순서대로 그 뜻과 관련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단어가 무려 1,457개. 음으로 읽는 한자어는 제외했으니 일본어의 상당수가 한국말과 발음이나 의미에서 대응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나다(會う), 일치하다(合う), 마주치다(遭う) 등의 뜻으로 쓰는 일본어 ‘あう’는 뜻이나 음 모두 우리말 ‘아우(어우)르다’에서 이어졌다. 황금 빛으로 누렇게 익은 벼를 거둬들이는 가을을 뜻하는 ‘あき’는 우리말 ‘익다’의 연용형인 ‘익어’에서 ‘이거-아가-아기’의 형태로 변한 말이다. 쓰다(書く), 그리다(畵く), 깨다(欠く), 매다(繫く)의 뜻으로 쓰는 ‘かく’는 ‘긁다’나 ‘깎다’의 연용형에서 ‘극고(깎고)-구고(가고)’로 이어진 말이다. 김 전 대사는 음도 음이지만 이런 경우 한국어와 일본어의 “의미 자질이 같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단어 하나씩 골라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만 것이 아니라 한국말(그는 주로 백제의 말이라고 본다)이 전해져 일본어로 변하는 원리, 즉 ‘음운대응의 법칙’을 책 서두에서 밝혔다는 점이다. 변형의 형태는 여러가지다. 초성의 경우 우리말 자음이 그대로 또는 유사하게 이어진 일본어가 있다. ‘남겨서’가 ‘のこす’로 이어지는 경우다. 받침은 아예 탈락하는 경우, 그대로 또는 다른 음가로 변해 분절되는 경우 등이 있다.
“두 나라 말의 유사성을 밝히는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일본 학자들의 경우는 고대 한국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이 정론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같은 알타이어 계통이지만 이미 한국어와 일본어는 5,000년 전에 갈라져 독립적으로 발전했다거나, 일본어는 남방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학설이 주류니까요.”
김 전 대사는 “한국어의 일본 전파를 연구하면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의 주장이 허구적이라는 것도 쉽게 드러난다”며 “한국어를 도외시한 채 자국어의 뿌리를 찾겠다는 일본 학자들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지식인들에 메지지”를 주기 위해 이 책의 일본어판 출판도 준비 중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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