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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경북 영양 - 영험한 일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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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경북 영양 - 영험한 일월산

입력
2005.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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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만으로는 부족해 달의 정기까지 모았다는 신령스러운 산이 하나 있다. 경북 영양군의 일월면, 수비면, 청기면에 자락을 펼치고 봉화군 재산면까지 아우르는 일월산(日月山). 그 곳에는 영(靈)들이 거한다. 겉보기에는 밋밋해도 높이가 1,219m. 경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 넉넉한 품 아래로는 백암산, 수양산, 울련산, 청량산 등이 옹기종기 키재기를 한다.

해와 달을 함께 아우른 음양의 조화 덕분인가, 신기가 흐른다. 많은 이들이 신내림을 받고자, 몸과 마음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몰려드는 곳. 전국의 내로라 하는 굿 잔치가 열리면 으레 가장 먼저 부르는 산신이 바로 “일월산신” 아닌가. 해서 일월산을 접신(接神)의 땅이라고 사람들은 부른다.

높이로만 봐서는 겁부터 먹기 쉽지만 일월산의 꼭대기에 오르기는 의외로 쉽다. 정상 가까이 까지 길이 뚫려있기 때문. 주변에서 가장 높다는 이유로 산 정상에 군 기지가 넓게 자리 잡았고 KBS 일월산 중계소와 통신 기지국까지 들어섰다. 포장길이 뚫린 연유다.

컴컴한 새벽 교교히 흐르는 달빛을 받으며 산으로 올랐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끼고 돌아 한참을 차로 달리니 어느덧 KBS 중계소 앞. 여기서 군부대 밑으로 난 산길을 따라 1.5km 걸어가면 정상인 일자봉의 해맞이 광장이다.

차 문을 나서니 겨울을 실감케 하는 한기가 몰아친다. 이파리 털어낸 나목들로 고슴도치 등짝 같은 산자락이 을씨년스럽다. 능선 너머로 붉은 빛이 번져 오르기 시작했다. 낙엽 가득 덮인 좁고 미끄러운 오솔길을 걷는 발걸음이 급해졌다. 군부대 밑을 빙 둘러 마침내 도착한 일출 전망대.

뻥 뚫린 시야 가득 들어 오는 것은 산, 산, 산의 바다다. 첩첩의 산 물결. 물결처럼 넘실대는 선들의 합주는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저 멀리 동쪽 끝은 동해 바다. 운이 좋으면 30km 밖 바다가 보인다는데, 바다 위로 구름이 드리워 아쉬움만 삼켜야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한참을 기다리니 드디어 구름 위로 멀건 햇덩이가 솟기 시작했다. 구름 속에서 한참을 익어서 나온 태양 빛은 망막에 강렬한 족적을 남겼다. 햇살이 번지자 발 아래 산자락들의 선들이 꿈틀꿈틀 살아나기 시작한다. 비스듬히 던져진 빛은 수묵의 농담처럼 스며들어 한 자락 한 자락 선들에 깊이를 더 한다. 뒤를 돌아보니 ‘일월산’ 표지석 위로 둥실 뜬 차디찬 달이 해와 산이 빚는 기막힌 풍경화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되돌아 나오는 길 차를 댔던 KBS 중계소 바로 아래에는 주위 풍경과 걸맞지 않는 묘한 집 한 채가 있다. 일월산의 주신이라는 황씨 부인을 모신 황씨부인당이다.

옛적 황씨 부인이라는 여인이 품은 한을 눅여주는 곳이란다. 혼인 첫날 밤 어린 신랑의 오해로 소박을 맞고는 수 년간 이 일원산을 헤매다 죽었다는 전설. 한이 그리도 깊었는지, 그 기운이 지금껏 영험으로 남아 각처에서 온 무속인과 기도객의 발길이 끊일 줄 모른다. 이른 아침임에도 건물 주변에는 향내와 불경 소리 은은하고, 까마귀 대여섯 마리 서로 희롱하며 날갯짓 한다. 사위에 자욱한 무기(巫氣) 때문일까, 괜히 몸이 움츠러든다.

일월산을 끼고 내려와 일월면 용화리에 이르면 용화사와 선녀탕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러잖아도 심상찮은 일월산의 음기와 영기가 가장 강하다는 선녀골.

계곡을 따라 동굴이나 돌무더기를 쌓은 무속인들의 기도처가 즐비하다. 큰 길에서 500m 떨어진, 맑고 차디찬 계곡물이 잠시 소를 이루고 있는 선녀탕은 기도객들이 기도를 하기 전에 몸과 함께 마음을 씻는 곳이다. 한여름에도 시리고 찬 기운이 몸 전체를 휘감는다니, 삼복 더위에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기다림은 오래지 않았다.

그 날 해거름. 산이 나그네를 부르는 듯 했다. 묘한 끌림. 일월산 있는 데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번에 오른 곳은 일자봉과 함께 일월산의 정상을 이루고 있는 월자봉(1,205m). KBS 일월산 중계소에서 불과 300m 거리다. 맹렬히 타들어가는 석양빛이 하늘로, 굽이치는 산자락 위로 뜨겁게 번져갔다. 장엄무쌍이란 말이 저 풍경을 위해 존재해 왔나 싶을 정도다.

먼 길 찾은 객에게 일월산신이 챙겨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영양=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은둔의 명승 즐비

“전북에 무진장이 있다면 경북에는 BYC가 있다”고들 한다. 전북의 오지 트리오 무주 진안 장수와 같이 경북에도 봉화 영양 청송 트라이앵글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내륙 깊숙이 들어선 궁벽한 고장들로 찾아가는 길은 사실 멀고 힘들다. 그러나 살짝 돌려 생각하면 그만큼 개발의 손길이 늦게 찾아 든 탓에 여전히 청정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

그러나 영양쪽으로 가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청송군에는 주왕산국립공원이, 봉화군에는 청량산도립공원이라도 있으나 영양 땅에는 그 흔한 도립공원 하나 없다. 그래서 더욱 외지인의 발길이 뜸하다. 그래서일까. 그저 고추로만 영양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최고의 고추를 익게 한 영양의 산하에는 일월산 말고도 숨겨진 절경이 부지기수. 옛 전통을 지켜온 꼿꼿한 양반네 습속이 아직 굳건하다. 내놓고 자랑하거나 장삿속으로 포장하길 꺼려왔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별 볼일 없는 관광지도 그럴싸하게 이름 붙여 죄다 입장료를 받아 챙기는 요즘이지만, 영양 어느 곳도 돈 내고 들어가는 데란 없다.

안동에서 청송군 진보를 거쳐 영양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진보에서 5km 되는 입암면 봉감마을에는 영양의 유일한 국보인 통일신라의 유물, 봉감모전석탑(제187호)이 있다. 논밭과 농가를 헤집고 찾아가 만난 석탑. 벽돌로 쌓아 올린 모전석탑의 대명사 경주의 분황사모전석탑과 비교해 그 위용이나 맵시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이 석탑이 주는 각별한 감흥은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에서 나온다. 굽이진 반변천 물길, 그리고 내 건너의 검붉은 절벽과 한 호흡을 이룬다. 자연과의 조화뿐이 아니다.

탑을 감싼 논밭과 농가, 그리고 탑 앞을 지나는 촌로의 여유로운 표정과도 그리 잘 어울릴 수 없다. 봉감모전석탑 뿐만이 아니다. 영양읍 현리의 삼층석탑, 모전오층석탑과 일월면 용화리의 삼층석탑 등 많은 영양의 탑들은 자연과 어깨동무하고 사람과 융화해 외롭지 않다.

일월산에서 발원해 영양 읍내를 가로질러 흘러내린 반변천이 입암면 연당리에서 청계천(동천으로도 불린다)과 합류하는 곳이 남이포. 강 건너 절벽에 촛대 같이 하늘로 치솟은 바위를 선바위라 한다. 선바위와 남이포는 절벽과 백사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경승지로 사랑 받았던 곳이다.

선바위 인근의 연당마을에는 담양의 소쇄원과 보길도의 세연정과 함께 국내 3대 정원으로 손꼽히는 서석지(瑞石池)가 있다. 이 마을 입향조인 석문(石門) 정영방(1577~1650)이 만든 정원이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면서 기품이 예사롭지 않다. 정자인 경정(敬亭)이 네모난 연못을 내려다 보고 서 있으며, 그 왼편으로는 서재 주일재(主一齋)가 들어섰다.

주일재 앞 연못에는 송, 죽, 매, 국을 심은 사우단(四友壇)을 내어 쌓았고 입구쪽 한 귀퉁이는 큰 은행나무가 빈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연못의 연꽃은 이미 시들어 버린 지 오래지만 황금빛 은행 낙엽이 마지막 색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남아있는 흙담 등이 빚어내는 고풍스런 마을 분위기가 서석지의 안온함을 더욱 빛내준다.

영양군의 북동쪽 수비면의 수하계곡은 청정의 땅 영양에서도 가장 깨끗하다는 곳. 물이 맑아 수달과 은어가 뛰논다는 울진의 왕피천의 윗물이 바로 수하계곡이다. 겨울의 호젓한 풍광 못지않게, 이 계곡은 한여름이면 반딧불이가 이루는 장관이 말문을 막는다. 수하계곡 안쪽에 군이 운영하는 반딧불이 생태학교가 있고, 청정하늘로 별과 만나는 반딧불이 천문대가 있다.

영양=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文香의 고장

올곧은 선비들이 사는 영양은 문향(文香)의 고장이기도 하다. ‘청록집’의 시인 조지훈, 1935년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을 창간한 오일도, ‘사람의 아들’ ‘변경’ 등의 소설가 이문열 등이 영양 출신이다.

그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바로 고향을 닮아 있다. 전통 마을로 남아있는 이들의 고향은 문학 기행의 훌륭한 자원이기도 하다.

조지훈의 고향인 일월면 주곡리 주실 마을은 일월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기와집이 즐비한 마을은 한양 조씨 집성촌이다. 마을 사람 모두가 일가친척. 마을은 지금 일월산 정기 문화권 개발 사업을 위한 정비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터 덕분인지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된 곳이지만, 조지훈은 그 정점에 있다.

마을 한가운데 조지훈 생가가 자리하고 있고, 마을 동쪽 끝 산자락에 시인이 어릴적 수학했던 월록 서당이 앉아 있다. 마을 터 덕분인지 조지훈 외에도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된 곳이다.

오일도는 낙안 오씨 집성 마을인 영양읍 감천마을에서 태어났다. 시인의 생가가 있는 이 마을은 그윽한 풍치로 이름 높다. 마을 앞에 흐르는 큰 내하며, 하천 절벽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천연기념물 측백나무숲이 마을 이름에 값한다.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은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 두들은 언덕이란 뜻으로 둔덕 위에 논밭을 내려다 보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석계고택, 석천서당, 주암고택 등 옛 전통 가옥이 잘 보존돼 있다.

이 마을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삼의계곡의 참맛은 하절기면 확연해 진다. 인근 주민들이 꼽는 피서처로는 수하계곡과 쌍벽을 겨룬다. 명동산과 맹동산에서 흘러 내린 맑은 물과 산바람이 서늘하다.

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영양

영양까지는 안동을 거쳐 들어가는 길이 가장 빠르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에서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 시내를 관통, 임하호를 지나 청송군 진보까지 달린다. 월전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북쪽으로 향하면 영양. 안동에서도 1시간 가량 걸린다.

일월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영양읍에서 봉화군 현동 방향으로 향하는 31번 국도를 타야 한다. 영양과 봉화군의 경계선 부근에서 영양터널을 지나자 마자 왼쪽으로 ‘KBS 일월산 중계소’ 이정표가 가리키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포장길만 따라 10여분 오르다 보면 황씨부인당을 지나 KBS 중계소가 나타난다.

관광지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숙박 시설이 부족한 편 영양읍내에 신라장 여관(054-683-3284), 궁전장여관(682-6964), 목화장여관(683-15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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