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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가에 기여하지 못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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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가에 기여하지 못한 죄

입력
2005.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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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이냐, 불구속이냐를 놓고 말이 많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듯이 “구속이 처벌이고 불구속이 곧 면죄부는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 법정주의, 엄격한 증거주의. 이런 것들은 처벌과 유무죄를 법원에서 결정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정하는 구속과 불구속 사이에 서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목을 걸기도 한다. 한 대학의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다가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불구속이 됐다. 한 재벌 그룹의 총수는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 등이 고려돼 불구속이 됐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의 원장을 했던 두 사람에 대해서는 국가를 위해 기여한 일이 더 많은 데 도청이라는 작은 누를 갖고 구속을 해야 했느냐는 뒷말이 많다.

세 사례의 공통된 주장은 그들이 ‘국가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국가의 보호와 안위에 관한 법과 관련이 있다는 점, 국가 경제에 관계했다는 점, 국가의 고위직에 있었다는 점 등이다.

국가적으로 살았던 분들은 “구속이 처벌이고 불구속이 면죄부는 아니다”는 정도의 식견을 지니고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불구속을 싫다고 했던 분들은 없지 않았나 싶다.

반면에 한국일보 사회면 11월19일자에 실린 ‘국선 전담 변호사 24시’에는 전혀 ‘비국가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사연도 있다.

국선 전담 김좌진 변호사가 만나는 피의자, 피고인들은 절도나 무전취식으로 걸리는 생계형 곤궁범들이다. 김 변호사는 유무죄 여부보다 구속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감생활이 두렵고 고통스러운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헌데 비국가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빨리 시인하고 불구속될 수 있는 이치를 모르고 “진짜 내가 그런 것이 아닌데”라고 자꾸 ‘진실’을 따져 김 변호사를 애먹인다고 한다.

같은 날 사회면에는 여성단체가 구명운동에 나선 여인의 사연도 있다. 적빈(赤貧)과 가정폭력에 평생을 시달리던 아내가 아이들 주려고 숨겨둔 돼지고기를 술과 바꿔먹은 남편을 줄넘기 줄로 목졸라 살해했다. 딱한 사연이지만 구속됐고 여인은 죄책감 때문에 영장 실질심사도 포기했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살아온 분들에게는 죄책감은 적어 보인다. 국가를 위해 기여한 것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비국가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비국가적으로 살아온 원죄 탓인지 죄책감이 많다.

국가적으로 살아온 분들은 설사 구속이 되더라도 또 풀려날 길이 있다. 비국가적으로 살았던 사람들보다 평소 영양이나 건강상태가 양호했을 터인데 구속이 되고 나면 병도 많이 난다. 평소 생활과 수감 생활의 격차가 클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그들은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사연으로 곧잘 풀려난다. 정히 안되더라도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나고 복권도 된다. 대통령이 독재자였던 시절이나, 민중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시절이나 때가 되면 풀려나기는 마찬가지다.

비국가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갇혀도 병이 잘 나지 않는다. 비국가적 존재들은 거창한 사면이나 복권의 틀에 끼기도 어렵다. 국가를 위해 한 일이 없으니 당연할 지도 모른다.

생활비나 등록금을 위해 난자를 판 여자들은 비국가적인, 따라서 비윤리적이고 위법적인 존재들이다. 국가의 큰 이익을 위한 연구에 난자를 기증한 여자들은 국가적인, 따라서 지극히 윤리적이고 숭고한 존재들이다. 국가와의 인연이 있고, 없음의 차이에 세상과 개인의 인식과 지각이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 수수께끼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라는 것이 먼저 생기고 국가를 구성하는 존재들이 생겨나지 않았으며, 그 역일 것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모양이다.

국가가 무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국가의 강제력이 형벌권과 조세권으로 행사된다는 현실은 유사 이래 그대로다. 이 두 가지 국가의 강제권력에 불만이 생길 때 역사에는 혁명이 발생했다고 적혀있다. 혁명이 박제가 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무저항인 비국가적 존재들의 사연을 마구 무시하면 국가적 존재들의 평안도 깨질 수 있다.

신윤석 사회부 부장대우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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