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연체료를 꼬박꼬박 무는 사람들 때문에 멸망한다’는 ‘급진적’인 글을 잡지에 기고해 문화컨텐츠대여협회, 대여업중앙회 등으로부터 피소될 위기에 처한 소설가 박민규씨에 대한 기사, 또 검찰이 상습적인 연체료 미납자는 횡령 혐의로 형사처벌 감이라고 밝힌 기사를 읽다가 가슴이 뜨끔했다. 비디오대여점의 연체료 때문에 적잖게 고민도 하고, 심지어 연체료를 벗어나려 종종 잔 머리도 굴려온 입장에서 그간의 ‘범죄행위’들이 좍 떠오른 때문이었다.
연체료를 피하려 새벽에 반납함에 넣고 새로운 대여점을 찾아 나선다는 소설가 박씨의 방법은 흔한 것이다. 새로 이사 온 척 하면서 “연체료는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긴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대기도 한다. 물론 가장 흔하게 쓰는 방법은 주인에게 “좀 깎아 달라”고 무조건 비는 것이다.(대체로 안 먹힌다)
연체료는 응당 내야 하는 것인데도 오래된 빚처럼 괜히 아깝다. ‘죄’는 지었지만 왠지 ‘사면’이나, 아니면 최소한 ‘감형’의 은전 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는 예전 ‘비디오가게’에서 느끼던 정겨운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골목 안 ‘비디오가게’는 친숙한 주인 아저씨, 아줌마와 농담 따먹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추천 받기도 하는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었다. 때로는 나란히 비디오를 감상하고, 친밀도에 따라 채 수입되지도 않은 영화의 불법복사판이 은밀하게 오가기도 했다. 말하자면 다루는 품목만 다른 그 옛날 ‘만화가게’ 풍경과 다를 것이 없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들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대여업중앙회 관계자는 “연체료 때문에 대여업체가 망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수백 편짜리 무협시리즈 중 단 한 편이 반납되지 않아 전편을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로 소송 끝에 40만원이 넘는 연체료를 받아낸 적도 있다는데 무엇보다 “얄미워서”였다고 했다.
연체료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 곳 비디오대여업체 블록버스터가 위기를 맞은 이유 중 하나가 연체료 면제정책이다. 연체료 걱정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 1회용 DVD가 개발되기도 했다.
맥도널드의 자회사인 레드박스는 최근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DVD 대여자판기를 설치했는데 제 때 반납하지 않으면 연체료가 신용카드를 통해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논란을 보며 ‘이젠 연체하지도 말고, 연체료 피하려 잔머리도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은 해보지만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세상에, 그 푸근하던 ‘비디오가게’가 자칫 형사처벌도 감수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곳으로 변하다니.
최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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