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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廉恥 없는 시대를 사는 법

입력
2005.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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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서 허덕이는 참여정부 지지도가 표피 민심인지, 저류 민심인지는 입맛대로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염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도층에서부터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과거 같으면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을 태연히 드러내고 오히려 큰 소리까지 치는 경우가 허다하죠.”

●지도층 몰염치 서민도 감염

최근 만난 한 인사는 “몰염치가 시대정신이 된 것 같다”며 자신부터 그렇다고 했다.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가 3,000여명의 친일명단을 발표하며 제시한 기준대로라면 일제 강점기때 법조인이었던 선친도 그 안에 포함됐을 것 같아 살펴봤더니 빠져있었지만 반갑기는커녕 “이 친구들이 왜 뺐지”라는 반감이 먼저 들더라는 것이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또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민가야겠다”고 내뱉고, 동남아 골프관광 여행객들로 공항이 몸살을 앓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농담이나마 애국심과 곤궁한 서민의 삶, 혹은 여행수지 적자 얘기를 꺼내면 “그래서?”라는 반문과 함께 즉각 “너나 잘 하세요”는 비아냥만 돌아온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인사도 거들었다. “얼마 전 만난 60대 모범운전자는 ‘10년째 경찰관을 도와 자원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차가 밀리는 교차로 진입을 통제하려고 하면 요즘은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로부터도 험한 말, 심지어 욕설을 듣기 일쑤죠’라고 개탄하더라고요. 지도층부터 권위나 품격이 없다보니 사회 전체에 몰염치가 판을 치는 거죠. 탈권위인지 몰권위인지….”

이야기는 자연스레 집권층 인사들의 잦은 말바꾸기와 낯간지러운 대통령 찬가로 옮겨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 말처럼 21세기에 사는데, 그 측근 인사들은 20세기 혹은 독재정권 시대의 교언영색(巧言令色)과 막말로 사안을 흐리다 보니 국민들도 도덕적 잣대를 놓는 사회병리 현상이 만연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중 압권은 ‘핵심을 궤뚫고 들어가는 기백과 뛰어난 정책적 상상력’‘국가적 과제와 수행방법을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옮기는 대통령’‘혼자 비 맞는 대통령이 안쓰러워…’등이다. 다른 쪽에선 친노세력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쥐나 개나 한마디씩 지껄인다”고 독기어린 말을 쏟아낸다.

이처럼 염치없는 일들이 횡행하는 근저에는 사이버 댓글을 대안언론처럼 여기는 듯한 대통령의 가벼움과 때때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청산주의적 리더십, 필요에 따라 좌파나 우파로 몸을 옮겨다니는 총리의 곡예술과 확신에 찬 말뒤집기가 있다. 관료들이 이런 체제에서 살아 남으려면 그들의 코드에 맞는 언행을 학습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위권적 홍보지침’을 주장하며 “(지침위반 경위) 조사조차도 성가시게 느끼는 정무직 공무원에게는 항상 자유로운 선택의 길이 열려 있다”는 홍보수석 조기숙씨의 말은 참으로 서늘하다.

문제는 이런 몰염치한 태도가 자기들만의 잔치나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라살림을 축낸다는 것이다. 최근의 세금논쟁이나 예산구조 논란은 ‘정권이 과연 자기주머니라면 그처럼 쉽게 털어 그처럼 편하게 돈을 쓸까’라는 의문을 주기에 충분하다.

크게는 호남고속철 조기 착공과 사회안전망 확충부터 작게는 소주세율 인상이나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에 이르기까지, 또 겁없는 국채발행부터 난데없는 기업세무조사 강화까지 손바닥 뒤집듯 쉽게 접근한다. 특히 정부가 새해예산 규모를 올해보다 6% 남짓 늘리면서 유독 각 부처의 홍보예산은 17%나 올려준 것은 코미디다.

●나라살림까지 쉽게 써대

이 정권은 ‘정책고객관리’나 ‘이슈 파이팅’이라는 생경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균형발전 지역통합 남북공존 연금개혁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양극화해소 등의 거대담론도 늘 붙어다닌다. 그러나 어디에도 서민의 삶에 대한 구체적 고민은 없다. 이 정부의 고객은 과연 누구이며 파이팅의 상대는 또 누구인가.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참으로 염치없는 태도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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