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며, 더구나 묘한 것은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감춰진 바를 가장 모른다는 점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말이다. 한국의 ‘지도자 문화’를 생각할 때마다 절감하게 되는 말이다. 내 생각은 워낙 소수파의 의견인지라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다양성 존중의 차원에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는 한국인들이 지도자를 필요 이상으로 추종하는 동시에 지도자가 가진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유별난 ‘지도자 추종주의’ 문화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좁은 땅에서 동질적인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살면서 강력한 중앙권력집중제를 시행해 갖게 된 기질일 것이다.
●필요이상 극찬하거나 매도해
지도자 추종주의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유능하고 강력한 지도자를 만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국민 각자 자기 몫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도자에게 의존하려는 심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를 필요 이상으로 극찬하거나 정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매도하는 양극단의 성향을 드러내 보인다.
지도자 추종주의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만연해 있다. 몇 년 전 어느 장관은 관계의 지도자 추종주의를 가리켜 ‘조폭 문화’라고 불렀다. 재계도 다르지 않다.
잘 나가는 재벌그룹을 들여다보면 ‘제왕적 총수’의 리더십에 절대 의존하고 있다. 정ㆍ관ㆍ재계의 지도자 추종주의를 비판하는 교수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선 거의 비슷한 성격의 지도자 추종주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과거 운동권 학생들도 ‘제왕적 의장’ 모시기에 바빴다.
지도자 추종은 지도자 경배로 이어진다. 한번 지도자는 영원한 지도자다. 그걸 가리켜 ‘전관예우’라고도 한다. 관혼상제를 비롯한 대소사에서 조상님들께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건 바로 벼슬 기록이다. 입만 열면 정치에 침을 뱉는 보통사람들도 개인 평가에선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한다. “아무나 장관 하고 국회의원 할 수 있나? 인물은 인물이지!”
지도자 되는 걸 ‘코리언 드림’으로 간주하는 의식 구조는 지도자급 엘리트에 대한 잠재적 공격성을 수반하며, 그래서 엘리트의 대폭적인 물갈이는 언제든지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마련이다.
문제는 엘리트를 아무리 물갈이해도 그 자리 자체가 ‘코리언 드림’을 이루는 출세라고 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데에 있다. 묘한 건 지도자들 스스로 국민은 늘 피해자라는 식의 국민예찬론을 폄으로써 국민의 면책심리를 강화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엘리트만의 문제로 오인케 하는 건 일시적으론 국민을 열광하게 할 수 있지만, 열광의 소재가 고갈되면 국민이 보내는 환멸의 부메랑을 맞는 비운에 처하게 된다.
●이젠 지도자 중독서 탈피해야
리더십은 그 속성상 ‘본질’의 문제라기보다는 ‘스타일’의 문제다. 지도자 추종주의가 강한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예컨대, 지도자의 국민 위로 기능은 ‘본질’의 관점에서 보자면 ‘쇼맨십’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타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필수 덕목이다. 지도자가 일일이 나서지 않더라도 사회 전체가 각기 분담된 기능에 따라 잘 굴러가지 않느냐는 항변은 본질주의의 오류일 수 있다.
국민 못지않게 지도자 추종주의에 중독된 언론의 시선과 관심이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는 현실에서 지도자가 ‘본질’만 강조하는 건 한국사회의 문법을 하루아침에 바꾸겠다는 과욕일 뿐이다.
언론과 국민도 지금과 같은 지도자 추종주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지도자에게 과부하를 거는 현 방식으론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지도자 추종주의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지도자만을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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