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 교환교수로 와 강의를 시작한 첫 학기가 끝나 간다. 학생들이 버릇없고 도전적이라는 경고를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이들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문 앞에서의 양보, 답변에 대한 감사의 말에도 흐뭇함과 보람을 느낀다. 형식과 방법은 다르지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세상으로 열린 길을 제시해주는 ‘선생’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은 동서에 큰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가장 큰 차이점은 선생을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센 ‘권위의 소유자’로 보느냐, 아니면 계약관계에 바탕을 둔 ‘서비스 제공자’로 보느냐의 시각차일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선생은 지식을 전달하고 사회의 규칙을 익혀주며 스스로 능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안내해 주는 역할을 전담한 직업인이다.
‘군사부일체’의 사상 아래 지식과 인격, 사고구조를 뜯어고칠 ‘특별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우리 선생들과 달리 교사로서의 정해진 책임과 의무만 다하면 되는 서구 교사들은 학생들의 인성이나 행동을 바로잡겠다는 욕심은 갖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지만 판단하고 규칙과 절차에 따라 개입할 뿐이다.
●교권과 교원평가제의 충돌
조기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한국은 선생님이 무서운데 미국은 너무 친절해서 좋아요”라고 하는 이유이고, 학부모가 교사에게 굽실거리거나 ‘촌지’를 주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배경이다.
학생에 대한 감독, 통제권의 핵심은 성적과 학점이고 학생들은 교사의 교수기법과 교육서비스의 내용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수업을 통해 어떤 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를 한다. 서로서로 평가하는 선생과 제자는 대등할 수밖에 없고, 학생들이 선생에게 도전적이고 비판적으로 질문을 하고 논쟁을 걸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교원평가제 도입이 유교적 교육이념의 붕괴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맞는 이야기다. 교사_학생 간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학교 교육기능의 붕괴로 인한 사교육 망국론과 조기유학 물결을 눈앞에 두고도 유교적 교육이념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단연코 반대하고 싶다.
더구나 학교를 절대적 주종관계로 경직화한 것은 유교이념 자체라기보다 일제 군국주의 이래 전체주의적 권력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서구 기독교 문명도 중세까지는 도제관계 등 절대적 주종관계로 사제관계를 설정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 대학에 교수평가제를 도입할 때도 교권 붕괴로 대학이 황폐화할 것이란 극단적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학은 큰 문제없이 학생에 의해 평가받는 교수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다. 2000년대 초 아프리카에서도 교원평가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했지만 나이지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교원평가제 도입 이후 교사의 교수기법, 학생의 학력, 학생의 필요 및 요구와 교사의 인식 간의 간격 축소 등 여러 측면에서 좋은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학교를 살릴수가 있다면…
다만, 교원평가제의 도입 이후에는 더는 선생님에게 부모 역할 대신해 주기를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주기’를 바라서도 안 될 것이다.
어려운 학생 등록금을 몰래 대신 내주고, 말 못할 집안 속사정까지 챙겨주며 흔들리지 않도록 다독여주기를 기대해서도 안 될지 모른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적시는 일은 이제 시대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흐름은 전통적인 ‘교권’과 ‘스승의 은혜’를 포기해서라도 학교교육의 정상화, 교원의 자질 향상, 교육현장의 투명화와 신뢰회복을 이룰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부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서구 못지않게 합리적이면서도 저들에게는 없는 사제지간의 정을 가진 학교를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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