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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김PD의 괴로움과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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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김PD의 괴로움과 방송국

입력
200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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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한 드라마 PD가 자살을 시도하여 중태에 빠졌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KBS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방송영화(HDTV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애초에 기획했던 규모로 제작하기에는 지원금이나 외부 투자액이 턱없이 모자라 “죽더라도 한 작품 제대로 만들고 싶었던”(유서 중) 그는 많은 괴로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김모 PD가 다행히 깨어난다면 그를 죽음 문턱으로까지 이끌었던 저간의 사정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가 병원에 누워있는 지금, 제작진과 제작지원사업 주관팀 사이에서는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오가고 있다.

제작진이 비현실적인 예산을 요구했는지, 아니면 KBS가 지원 약속을 어긴 채 닦달질만 했는지 차차 밝혀질 것이다. 아마도, 좋은 작품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던 젊은 감독의 열정과 저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자 했던 KBS의 ‘선의의’ 프로젝트가 결국 타협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리라 본다.

그러나 이 비극을 접하면서 또 다른 차원의 씁쓸함이 생기는 것은 촉망 받던 젊은 감독의 목숨을 위협하던 그 돈의 액수가 요즘 웬만한 영화의 주연 배우 출연료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제작비 2,000만원을 들여 만든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가 극찬을 받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 한 편에 5억원 이상을 받고 미니 시리즈 한 회분에 2,000만원 이상을 받는 배우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자살을 기도한 김 PD나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이 이런 A급 스타의 기용을 언감생심 꿈이나 꿀 수 있었을까?

스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이들에게 ‘연예권력’이 집중되는 요즘의 경향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돈을 더 주고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많을 때 상품의 가격은 오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좋은 상품을 탐내 하면서도 정당한 방식으로 사기는 꺼리는 이들이다.

바로 방송사들이다. 드라마의 경우, 최근 5년 동안 톱스타의 출연료는 10배 가까이 올랐지만 방송사가 지불하는 총 제작비는 고작 50% 정도 올랐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출연자 수가 줄어들고, 제작기간이 짧아지고, 단역배우나 스태프들의 처우가 나빠지고, 온갖 편법을 동원한 간접광고가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작품의 전체 질은 떨어지는 현실.

출연료의 거품 탓이라고 탄식하기 이전에, 방송사는 그 거품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스타를 활용한 시청률 확보가 ‘좋은’ 작품 만들려는 욕심보다 앞섰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김 PD가 스스로 목을 매게 한 발단이 되었던 ‘HDTV 영화 지원사업’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치졸한 시청률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선, 그야말로 ‘선의의’ 사업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저예산으로 우수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독려하면서, 한 편에서는 그 액수를 평범한 (하지만 치열한 시청률 전쟁에 참전하는) 미니시리즈 두어 회분 만드는 데에 쏟아 붓는 모순을.

만약 시청률과 광고수입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리고 스타급 연기자의 존재가 그 핵심이라고 믿는다면, 방송사들은 불평 없이 큰 돈 들여 그들을 출연시켜야 한다.

모두가 뻔히 아는 제작비의 60, 70%만 주면서 외주 제작사들에게 알아서 협찬 받아 비용 메우고 스타는 꼭 출연시키라는 요구를 하지는 말아야 한다. 만약 우수한 감독이나 스태프를 활용하여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진정성이 있다면, 최소한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쓸데없는 가정을 해본다. 어줍지 않은 반짝 스타에게 주는 출연료 몇 회분만 아껴 그 열정적인 감독에게 제작비로 지원했다면…. 그랬다면 혹시 지금쯤 방송사가 자랑스러워 할 훌륭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았을까?

/연세대 영상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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