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외면을 자초하는 셈이죠, 뭐….”
열린우리당의 한 원내부대표가 23일 오전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자조섞인 푸념을 내뱉었다. 쌀 비준안에 대한 농민 반발이 날로 격화하고 있고, 이날 본회의 처리가 예정된 상황에서 “한가하게 당원협의회 문제나 논의해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국회가 이날 꼭 비준안을 처리했어야 하느냐, 마느냐는 일단 접어두자.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농민들이 자식 같은 나락더미에 불을 지르고, 논을 갈아 엎고, 여의도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농촌 총각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날만이라도 우리당은 350만 농심(農心)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안타깝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필요하다면 용서라도 비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당은 그 시간에 당원협의회 구성단위를 행정구역에서 선거구로 재편하고, 당원협의회장의 명칭을 운영위원장으로 바꾸는 당헌 개정안을 처리했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양극화 해소에 매진하자”고 하더니, 본회의 때문에 의원들이 많이 나온 점을 감안해 회의 일정을 이틀이나 앞당기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조치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원내대표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본회의장 단상 사수전략을 논의하는 의원들에게서 과연 국민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당헌 개정은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날만은 피했어야 했다. 우리당은 10ㆍ26 재선거 참패 후 “국민의 마음을 얻겠다”며 비상대책위를 구성했지만, 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지를 이날 여실히 보여줬다.
양정대 정치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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