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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교수 "광고낼 수도, 환자것 훔칠수도 없어" 난자 구하러 뛰어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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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교수 "광고낼 수도, 환자것 훔칠수도 없어" 난자 구하러 뛰어다녀

입력
200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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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팀 연구원의 난자기증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 난자기증이 어떻게 유도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더해가고 있다.

황 교수가 처음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2년. 소의 난자로 기초 검증을 거쳐 사람 난자로 실험을 시작했지만 줄기세포 추출은 커녕 배아를 키우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2003년 4월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박사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배아는 복제하면 필연적인 염색체 이상으로 8세포기를 넘길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황교수는 이 논문을 보고 “선생님, 이거 안 됩니다” “원래 안 되는 거래요”라고 말하는 연구원들을 윽박 질렀다. “된다, 내가 된다면 되는 거다.” 그 해 5월 결국 황 교수팀은 처음으로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는 복제배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황 교수팀은 일에 묻혀 살았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휴일 없는 달력, 오전 6시에 출근하는 교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곧바로 실험실로 출근하는 박사…. ‘비정상’으로 보이는 그들은 “세계 과학계에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열겠다”는 독기로 뭉쳐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이들이었다.

난자를 기증한 것으로 알려진 한 연구원은 지방 대 졸업 후 박사과정 입학 전부터 황 교수 실험실에서 동물의 피가 묻은 걸레를 빨고 실험 도구를 닦는 일을 도맡아 했다. 황 교수는 “어느 날 새벽 3시 실험실에 들렀다가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연구원들이 왜 불도 끄지 않고 퇴근했나’하고 들어가 보면 여지없이 그 연구원이 앉아 낮에 어깨너머로 배운 복제실험을 연습하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아무리 팀워크가 뛰어나고 신념이 강해도 난자를 구하는 일은 정신력으로 되지 않았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2002년 처음 공동연구를 하기로 해놓고 몇 달을 고민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누가 주겠습니까. 미국처럼 신문에 광고라도 낼까요? 몰매를 맞았겠죠.

환자의 난자를 훔칠 수는 없었습니다. 저에게 난자가 있었다면 제 것이라도 뽑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황 교수도 난자를 얻기 위해 난치병 환우회 모임 등을 만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2004년 5월 네이처지에 난자기증자로 보도된 또 다른 연구원은 당시 “척수손상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내 난자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연구원의 난자기증이 국제적 윤리기준에 어긋나는 일이며, 비난 받을 일이라는 의식이 당시에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연구원의 난자기증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지 여부는 24일 황 교수의 공식 진상발표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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