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대국의 전쟁터였다는 아픈 경험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약점을 현재의 강점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똑같지요.”
한국을 다시 찾은 마렉 벨카(53) 폴란드 전 총리는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국의 공통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는 1996년 한국을 방문한 적 있고, 총리 재직 시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적이 있다. 20일부터 사흘간 방한한 것은 내달 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지지표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벨카 전 총리는 차기 사무총장 자리를 두고 앙헬 구리아(55) 멕시코 전 재무장관과 경쟁하고 있다. 캐나다출신의 도널드 존스턴 현 사무총장은 내년 5월로 임기가 끝난다.
그는 “OECD를 유럽중심 경향에서 벗어나 더 세계적이고, 더 흥미로운 기구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벨카 전 총리는 한국을 ‘지지를 받고 싶은 나라’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았다.
그에 따르면 한국과 폴란드는 역사와 국민정서에서 놀랄 만큼 닮은 꼴이다. 독일과 러시아에 인접한 폴란드는 3국분할, 2차대전, 냉전을 거치는 동안 숙명처럼 강대국의 지배를 번갈아 받아왔다.
“과거에는 불리했던 지정학적 조건이 평화의 시대에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됐습니다. 독일 러시아와의 과거사를 극복한 지금, 폴란드는 유럽 무역로의 교차로입니다.” 벨카 전 총리는 한국이 동북아 허브국가를 꿈꾸고 있는 것처럼, 폴란드도 신흥유럽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지지표를 받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두 나라가 사실상 OECD 동기생이라는 점이다. 한국과 폴란드는 96년 한 달 간격으로 OECD에 가입했다.
벨카 전 총리는 “한국과 폴란드는 비교적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OECD 회원국이라는 지위를 통해 선진7개국(G7)이 주도하는 국제경제의 어젠다에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9월 실시된 총선에 소속정당인 민주좌파연합이 패배해 이 달 초 중도우파에 내각을 내주기까지 1년6개월간 총리를 지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과 재무장관을 각각 두 차례 번갈아 역임하며 폴란드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이끈 경제학자 출신.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에 관한 논문으로 폴란드 국립 우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 컬럼비아대, 시카고대에서 연구한 대표적 친미파이다.
특히 이라크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의 경제정책 국장으로 이라크 전후 관리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폴란드군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통해 폴란드는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크게 강화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전략적 결속이 견고해졌고 내년부터 아프가니스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작전지휘권을 갖는 등 NATO에서의 입지도 강화됐으며 이라크의 군수ㆍ석유산업에 참여하는 등 경제적 성과도 거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폴란드는 미국의 동맹이면서 동시에 유럽의 일원이라는 균형감각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사진 조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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