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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기 지금] 스크린쿼터 지킴이 8년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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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기 지금] 스크린쿼터 지킴이 8년 안성기

입력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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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그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겸손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의 그에게 ‘운동’ 이란 단어는 여전히 낯설다. “나하고 안 맞는 일이다. 아직도 자연스럽지가 않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한 마디 해야 할 때가 가장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배우 안성기(53)는 스크린쿼터지키기 ‘운동’ 에 앞장서 오고 있다. 영화인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지 벌써 8년째다. “하겠다는 사람이 있었으면 벌써 빠졌을 것이다. 하겠다는 사람은 안 나타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그냥 그만 둘 수는 없고…”

“등 떠밀려, 허우적대며 시작했다” 고 처삼촌 벌초하듯 할 그가 아니다. 그는 안다, 영화인들이 왜 그 자리에 앉혔는지를. 갈갈이 찢긴 영화인들을 아우르고, 스크린쿼터지키기의 호소력을 크게 하기에는 원만하고 성실한 국민배우 안성기보다 좋은 인물은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출연작품보다 스크린쿼터 이야기를 하자면 더 반가워하는 그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그 ‘어눌하고 작은 목소리’ 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_가장 큰 보람은.

“지난달 20일 유네스코가 문화다양성협약을 채택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뺀 세계 148개국이 우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으며, 우리의 말을 현실화시켜주는 첫 발걸음인 셈이다.

너무 좋아 자축파티도 했다. 사실 재작년부터 경제가 나빠지면서 스크린쿼터도 위기였다. 1998년과 달리 국민감정도 나빠져 ‘집단이기주의’ 라는 말까지 나와 무척 당황했다. 그 어려움을 딛고 오늘의 결과를 얻었기에 기쁨도 크다.”

_배우로서는 이 일이 시간도 뺏기고 해서 손해일 텐데.

“부담은 있지만, 손해라고는 생각 안 한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도 시간 뺏긴다고 생각하면 못한다. 오히려 거기서 많은 것을 느끼고 얻어 내 삶이 좋아진다.”

_벌써 4년째 한국영화는 시장점유율 50%에 가까운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꼭 필요한가. 스크린쿼터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도 미국이 끈질기게 축소를 요구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40%가 넘었다고 축소하거나 폐지해 버리면 다시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스크린쿼터를 없애고도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결과가 너무나 뻔한데 그냥 따라갈 수는 없다.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한국영화의 자본, 인력이 점점 빠져나갈 것이다. 유통, 배급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다. 미국은 유네스코의 결정이 우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국의 스크린쿼터야말로 문화다양성 지키기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나라의 움직임이다. 당장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를 체결하면서 자국영화 상영비율을 66.7%로 정한 것만 봐도 그 파급효과를 알 수 있다.”

_이번 부산 APEC에서 미국이 스크린쿼터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17일에는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이 '스크린쿼터 유지' 를 재천명했지만 여전히 축소의 가능성은 남아있지 않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유리한 상황에서 축소를 할 이유가 없다. 미국도 이제 힘으로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회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여론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축소를 시도한다면 격렬하게 우리 목소리를 낼 것이다.”

_미국과의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고 대신 한국영화의 다른 발전 방안을 강구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런 것은 생각도 않는다. 지난해 이창동 당시 문화관광부장관도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현실성 없는 고육지책으로 여겨 얘기 않고 지나갔다.”

_'누구를 위한 스크린쿼터 인가'란 비판도 많다. 스크린쿼터로 일부 영화인과 상업영화만 혜택을 볼 뿐, 한국영화 다양성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스크린쿼터 지키기에 집중했다. 우리의 목표대로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다양성협약이 비준되면, 한국영화 자체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을 본격 추진해야 한다. 스크린쿼터 일부를 단편, 저예산 독립영화 같은 비상업적 영화에 적용하는 마이너리티쿼터제, 상업영화 수익의 일부로 이들 영화를 지원하는 영화발전기금 조성, 스태프 처우개선 등에 대해 논의를 집중할 것이다.”

스크린쿼터 이야기를 끝내고 배우 안성기의 근황을 물었다.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내몽고자치구와 베이징(北京)에서 촬영 중인 중국 합작 ‘묵공’ 으로 주인공 묵자(류더화)를 공격하는 조나라 장수 황엄중 역을 맡았다. 또 하나는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로 ‘피아노 치는 대통령’ 에 이은 두번째 대통령 역이란다. 주연도, 거액의 출연료도 아니다. 이 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다.

“스타가 조연을 하기란 쉽지 않다. 주연 때보다 출연시간이 적어 영화로부터 동떨어지는 것이 견디기 힘들고, 주연과 달리 한번 잘못 미끄러지면 회복불가능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할 좋으면 해야 한다. 주ㆍ조연 문제보다 어떤 역할이냐가 중요하다. 역이 작아도 멋있으면 된다.”

“배우 출연료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좋다. 한류스타보고 국내 일반 출연료를 받으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나는 이렇게(2000년까지 한국영화의 제작 여건을 감안해 ‘1억원 이하’ 를 고수)했으니 너희들도 덜 받아라고 말하기 힘들다.

나는 제작자, 감독들과 선후배로 살아와 비즈니스가 안 된다. 그래서 늘 조금 손해를 본다. 배우들도 돈만 밝히지 말고 긴 안목으로 역할만 좋다면 자신의 연기와 한국영화 다양성을 위해 거기에 맞는 출연료를 받고 저예산영화나 단편영화에 출연해야 한다. 일종의 투자다. 좋아하는 영화를 오랫동안 하는 것이 배우의 최고 행복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요즘 스타들은 출연작품이 너무 적다고 했다. 결국 ‘웰컴투 동막골’ 에서처럼 그동안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같은 연기자들이 그들을 대신해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새 사람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공은 이름이 아니라 연기를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달려 있다.”

이대현 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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