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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우리 아들이 美 변호사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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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우리 아들이 美 변호사 됐습니다"

입력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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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붙었다. 자폐증을 앓아 제대로 대학공부나 끝마칠 수 있을까 생각했던, 도대체 법대 공부라는 게 가당키나 한가라고 생각했던 아들 영식(27)씨가 처음 시도한 미국 변호사 시험에 덜컥 합격해 버린 것이다. 함께 시험을 본 딸 경식(26)씨도 붙어 말 그대로 ‘겹경사’를 맞았다.

20일 발표된 올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 한인 합격자는 대략 200명. 그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를 영식씨의 합격은 퍼시픽 펠리세이즈 지역의 조원영(58)-미라(49)씨 부부에겐 너무나 특별한 선물이었다.

지난 20년간 조씨 부부에게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돌을 갓 지난 영식씨는 결핵예방백신(B.C.G) 접종의 부작용으로 왼쪽 겨드랑이 살이 곪아 들어가 이를 도려내는 큰 수술을 받았고, 다섯 살 때까지 어른들도 견디기 어려운 결핵을 앓으면서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졌다. 자폐증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영식씨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불가능했고 학교 성적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사치였다.

그래도 아버지 원영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세탁소를 아내에게 맡기고 카운셀러로 등ㆍ하교를 같이하면서 아들의 곁을 지켰다.

덕분에 영식씨는 뉴욕 유니언대학을 졸업했고 2002년엔 새크라멘토에 있는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기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법대 진학이란 이들 부자에게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식씨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첫 학기에 과락을 당했고, 안면근육 마비증세까지 왔다. 학교에선 “이렇게 심신이 약한 학생을 더는 가르칠 수 없다”고 통보를 했다. 원

영씨는 한 달 안에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놓겠다고 학교 측과 담판을 짓고, 그날부터 아들과 함께 먹고, 공부하고, 생활했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만류했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정에 잠자리에 드는 강행군을 했다.

결국 영식씨는 졸업과 동시에 4개월 남짓한 시험 준비로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게다가 동생 경식씨 마저 법대 졸업생에게는 최고의 영예라는 연방법원(샌디에이고 고등법원) 서기에 합격했다.

영식씨는 “혼자 힘으론 여기까지 절대로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아버지 원영씨는 “20년간 이렇게 매달린 건 아들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눈물도 마르나 보다. 20년간 아무도 모르게 가슴으로 흘렸을 눈물이 이제는 기쁨의 웃음이 돼 아버지의 눈가를 적셨다.

미주한국일보=이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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