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화선’을 본 사람들은 기생 매향이 불던 생황을 기억할 것이다. 옛 사람들이 ‘봉황의 울음소리’라고 했을 만큼 신비로운 음색을 지닌 이 악기는 중국에서 들어와 삼국시대부터 쓰였다.
오대산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이나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외벽의 부조 비천상에도 생황 부는 천녀가 보인다. 신윤복의 풍속화에도 생황 연주하는 기생이 자주 등장한다.
생황은 우리 전통악기 중 유일하게 동시에 여러 음을 낼 수 있는 악기이기도 하다. 나무로 된 울림통에 길고 짧은 대나무 관을 여러 개 꽂은 모양새인데, 대나무 관 안에는 아래쪽에 쇠청(금속제 리드)이 붙어있다. 몸통의 취구로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쇠청이 떨면서 나는 소리가 대나무 관을 통과하면서 아주 미묘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생황은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궁중의 큰 행사 특히 문묘와 종묘의 제례음악에 반드시 들어갔고, 조선 후기에는 민간의 가곡(시조시를 소편성 관현악 반주로 부르는 노래)이나 줄풍류(가야금ㆍ거문고 등 현악기 중심의 실내악) 등에 쓰이며 문인들의 풍류악기로 사랑 받았다. 그러나 전승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금은 드물게 쓰이는 악기로 남았다.
23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리는 한국생황연구회 창단연주회는 잃어버린 생황의 존재를 되찾으려는 부활의 첫 걸음이다. 국립국악원에 몸담고 있는 한국 생황의 일인자 손범주(43)씨를 중심으로 20여 명의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전통곡부터 창작곡, 영화음악과 탱고까지 다양한 음악으로 생황의 미래를 가늠한다. 전통곡인 ‘수연장지곡’과 ‘송구여지곡’을 생황으로 합주하고, 생황과 단소 병주의 명곡 ‘수룡음’에 아쟁을 더 넣어 묵직한 저음을 보태고, 창작곡과 영화음악, 탱고는 생황 독주에 피아노나 베이스, 타악 반주를 붙여 독주악기로서 생황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표 손씨는 정악 피리의 명인 정재국씨를 통해 생황을 처음 접한 뒤 생황의 매력에 빠져 10년간 중국을 오가며 생황 연주법과 제작법을 배웠다. 국내에서는 피리 등 다른 관악기 전공자가 부수적으로 생황을 익혀온 반면, 중국과 일본에는 전공자도 많고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황은 중국에서 수입한다. 우리 음계에 맞게 특별히 주문ㆍ제작해서 들여온다. 국내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요가 워낙 적어 만들지 않는다.
그는 3년간의 중국 연수에서 돌아온 1997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생황 보급에 나섰다. 생황 음악의 직접 작곡과 위촉, 잊혀진 레퍼토리 복원, 창작곡 연주를 위한 악기 개량 등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종묘제례악을 생황이 들어간 원형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생황의 국내 제작과 레퍼토리 확대를 숙제로 꼽는다.
“생황 소리를 듣고 많은 분들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이라고 해요. 참 신비하고 미묘한 소리죠. 1700년 동안 우리가 써온 악기이고, 농현 등 우리만의 주법과 표현기법을 살리면 중국이나 일본 등이 따라올 수 없는 한국 생황 고유의 맛이 살아납니다. 요즘 생황은 울림통을 나무나 구리로 만들지만, 원래는 바가지를 썼어요.
세종대왕 시절 복원됐다가 맥이 끊긴 박통 원형을 다시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박통에서 울리는 소리가 더 포근하죠. 생황 음악 악보집도 준비 중입니다.” 공연문의 (02)583-0115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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