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를 몇 달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기자는 많은 인사들을 접하게 되지만, 황 교수와의 만남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이었다. 황 교수의 개인캐릭터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편집국 내에서도 그의 활동반경에 대해 비판조의 목소리가 나오던 터였다. “그 양반 바깥 활동이 너무 많아. 그래 가지고 언제 연구에 전념하나.”
그날 저녁 황 교수에게서 받은 인상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교적 감각과 정치적 센스, 그는 ‘연구실의 과학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정말 과기부장관 욕심이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의문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엄청난 전ㆍ후방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비로소 풀려나갔다. 줄기세포 프로젝트는 사방에 지뢰가 깔린 전장이었던 것이다.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성원, 언론의 지지, 선진국과의 공조를 돈독히 하지 않고서는 한 순간에 떨어지고 마는 아슬아슬한 곡예 게임. 황 교수가 문제의 섀튼 교수를 끌어들였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최근 난자 논란이 해외에서부터 터져 나온 사실이 그 민감성과 폭발성을 말해준다.
줄기세포 연구는 적어도 두 개의 황금열매를 맺을 전 지구적 프로젝트다. 인류의 난치병 해결에 희망을 주는 햇살이며, 경제산업적으로 블루오션의 금광인 것이다. 2020년에 가면 생명공학산업 시장규모가 정보기술산업을 추월해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는 극적 변화가 올 것이라고 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그 한 복판에 있다.
줄기세포 산업은 벌써 기포를 내뿜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나서지 않을 뿐 주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이다. 줄기세포 연구에 30억달러를 쏟아 붓기로 한 캘리포니아에서는 신 골드러시(The New Califonia Gold Rush)라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도 황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첫 발표를 한 지난해 줄기세포 산업화를 위한 대규모 정부지원책을 내놓아 ‘내가 질세라’다.
과학기술이 산업과 융합해 돈이 되는 세계, 그 세계에 횡행하는 음모와 질시, 시샘과 마타도어는 상상을 초월한다. 12대 글로벌제약회사들이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개발을 위한 비공개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황금시장의 선두를 달려오다 무명 후발자의 도전을 맞은 미국은 뒤통수를 때려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미래를 선점하려는 각축장에 혜성같이 등장한 황 교수에게 최근의 사태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만의 하나, 황 교수의 논문 자체가 취소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치명타다.
이 위기는 결코 황 교수 개인의 위기가 아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번 사태가 혹시라도 방폐장부지 선정 문제 식으로 소모적 논란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그래야 줄기세포 성공의 최대 관건인 국제 공조와 지지도 다시 얻어낼 수 있다. 윤리 체계도 가다듬어야 한다. 한국이 줄기세포 연구허브뿐 아니라 줄기세포 윤리허브가 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에는 과학, 의학, 그리고 그것들이 획기적으로 진전할 때 뒤따르는 사회적 후유증, 나아가 경제적 가치라는 복합적 문제가 얽혀있다.
사태 극복의 열쇠는 황 교수에게 있지만 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국민과 사회다. 황 교수 역시 국민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연구는 계속 된다”고 황 교수가 힘내어 말해주기를 세계의 난치병환자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송태권 경제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