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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함수와 여론조사/의도적 질문·조작의혹… 그대로 믿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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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함수와 여론조사/의도적 질문·조작의혹… 그대로 믿기엔…

입력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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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는 한국 정치의 기본 요소가 돼 있다. 각종 공천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여론조사는 중요한 참고 사항이다. 지난 대선 때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유례 없이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가 여론조사로 결정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여론조사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그 무엇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만들어낸다는 지적도 있고, 심지어 일각에서는 조작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여론조사 기관도 난립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한국 정치에서 필수적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 수치의 마력에만 빠져있기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여론조사의 함정들

17대 총선의 공천 작업이 한창이던 2003년 12월, A당에 공천신청을 했던 K씨는 중앙당의 지역여론조사 결과를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몇 달간 지역구를 닦아온 자신보다 며칠 전 낙하산 타고 날아든 인사의 지지도가 높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론조사 문항 공개를 요구했지만 당 공천심사위는 이를 거부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당시 질문은 “OO사 사장을 지낸 A씨와 OO당 부장을 지낸 B씨 중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식이었다고 한다.

미리 점 찍은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경력의 차이를 부각시킨 질문이었다. 여론조사가 지도부의 공천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한 것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형성한다는 논란도 있다.

2003년 6월 실시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여론조사가 대의원 표심에 거꾸로 영향을 미쳤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경선을 10여일 앞두고 한 일간지는 대의원 1,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최병렬 후보가 서청원 후보에 2.3%포인트 앞섰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실제 선거인단 명부가 바탕이 됐다는 점에서 당시 조사는 주목을 끌었지만, 경쟁 후보들은 “최 후보측이 유리한 지역의 대의원을 중심으로 작성된 명부를 언론사에 흘려 대의원 표심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반발했다.

승세를 보여주면 부동층이 따라온다는 ‘밴드웨건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최 후보는 서 후보를 2.4%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당시 최 후보 진영에서 몸 담았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에게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었지만 대의원 명부를 우호적 지구당부터 확보하다 보니 일부 지역은 누락될 소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 즉 표본 추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충격적인 증언을 한 적이 있다. 지난 대선 때 한 후보의 외곽진영에서 수억원대의 거액을 제공하며 협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거절했지만 다른 모두 전문가들이 거절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론조사는 표본추출과 질문지 작성, 조사, 결과 보정(補正)의 과정을 밟는다. 여기서 한군데라도 세심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조사결과는 표본오차를 넘는 측정 불가능한 오차를 만들어낸다. 조작을 하자고 마음 먹으면 수많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아예 결과 자체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의원총회 등에서 자체 여론조사를 발표하는 경우가 있는데 믿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16대 국회 후반에 K장관의 해임안을 두고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를 예로 들었다. “문항도 편향적이었지만 아예 결과를 바꿔 의원들까지 속였다”고 고백했다.

여론조사기관의 신뢰성

믿을만한 여론조사기관도 있지만, 일부 기관들은 신뢰성을 의심 받는다. 국내 여론조사의 경우 다양한 표본 관리가 이뤄지는 선진국과 달리 표본추출을 전화번호부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전화번호부 등재율이 갈수록 떨어지는데다 휴대폰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표본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전문상담원의 전화 면접이 아닌, 전화자동응답장치(ARS)에 의한 조사는 더욱 심각하다. 성(性), 연령에 따른 분포의 신뢰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민감한 선거 판세를 따지는데 ARS조사를 사용하는 것은 선진국에선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10ㆍ26재선거 당시 각 정당이 내놓은 여론조사의 대부분은 ARS조사였다. 같은 날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기관마다 제 각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여론조사가 실제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광주에 출마했다 낙선한 무소속 홍사덕 후보측은 “선거 일주일 전 한 여론조사 기관이 홍 후보가 경쟁 후보에 8% 뒤지고 있다는 ARS조사 결과를 발표, 표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전문 면접원과 시설, 노하우를 갖춘 여론조사 기관은 30여개 정도 꼽힌다. ARS 조사기구만 설치해 놓고 여론조사 기관이라 자처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수백여개나 된다.

중소 여론조사 기관의 신뢰성에 대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굘Ⅵ?난립한 여론조사 기관은 검증 받지 않은 결과를 마구 쏟아내고 있다.

한 정치인은 “돈만 주면 원하는 대로 주문제작을 해주겠다며 접근하는 기관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떳다방’식 조사기관은 더욱 난립할 전망이다.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강미은 교수는 “여론조사에 대해 협회와 언론학회의 권고 기준만 있을 뿐”이라며 “사후 검증 절차와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양정대기자 torch@hk.co.kr

■ 1987년 대선 때 본격 도입

정당과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확인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일이지만, 우리 정치권에 여론조사가 상식이 된 것은 20년이 채 안됐다.

여론조사가 본격 도입된 것은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때라는 데 이론이 없다. 당시 민정당 국책연구소 부소장이었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사실상 선구자였다.

‘1노 3김’이 치열하게 맞붙은 상황에서 그는 객관적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각 후보의 장단점,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취약계층 등을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노 후보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어 이듬해인 88년 13대 총선을 시작으로 92년 14대 총선 및 대선, 95년 지방선거, 96년 15대 총선, 97년 대선 등 10년 새 6차례의 큰 선거를 치르는 동안 여론조사는 현실정치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또 공천 물갈이의 근거가 되거나 공정성 시비를 낳기도 했다.

여론조사가 선거 뿐만 아니라 평상시 정국 현안이나 정책에 대한 민심 향배를 파악하는 데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에 의해서 였다는 게 정설이다.

92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기관을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문민정부 출범 직후 전병민씨를 축으로 한 ‘광화문팀’ 등 비선라인을 조직, 민심 동향을 시시때때로 YS에게 보고해 신임을 얻는 방식으로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 청와대가 각종 현안에 대해 공식ㆍ비공식 여론조사를 한 것도 현철씨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물론 96년 총선 때 당 안팎 여론조사 기구를 장악, 공천에 깊숙이 개입해 물의를 빚었다. 김씨는 97년 한보 청문회에서 “그 동안 여론조사 비용으로 25억원 정도를 썼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한국갤럽이 1% 포인트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 97년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후 정치권에는 여론조사 맹신 분위기마저 조성됐다. 선거 때가 되면 각 당이 일주일에 3~4차례 여론조사를 하는 건 예삿일이 됐다.

2002년 대선 당시 이념과 정책적 지향이 판이한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룬 것은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 여론조사에 속지 않으려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행해지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모두 곧이 곧 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 만큼 부실한 조사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조사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먼저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이 신뢰성을 먼저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 회원사가 아니라면 여론조사 결과를 일단 의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두번째로 볼 것은 표본 수이다. 총선 등을 앞두고 특정 선거구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조사라 하더라도 표본 수는 800명 이상이 돼야 한다. 전국 단위의 경우 1,000명 이상이 기본이다.

표본 수가 적정하다 해도 표본구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연령과 성별 지역별로 비중에 맞게 분포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층 비율이나 특정 지역 표본 수가 지나치게 많지 않은지 등이 관건이다.

설문 문항이 보편타당한지를 검증해야 하는데 워낙 교묘히 의도한 답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 식별이 쉽지 않다. 질문 속에 이미 ‘정답’이 들어가 있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미국이 제3세계 내정에 간섭하는데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처럼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은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 윤리규약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때는 반드시 조사대상, 조사시기, 표본수, 표본오차 등을 명기토록 하고 있다.

표본 오차와 조사 결과도 비교해야 한다. 표본수가 1,000명인 경우 표본오차는 ±3.2%다. 그런데 A후보가 25.3%, B후보가 24.3%의 지지도를 기록했다면 두 후보간 차이(1%포인트)는 오차범위 내 있으므로 무의미 하다. 누가 누구를 앞섰다고 할 수 없는 수치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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