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회에 개정해달라며 제출한 법안 중에 금융산업구조개선법, 일명 ‘금산법’이란 게 있다. 용어만큼 개념도 생소한 이 법안을 놓고 열린우리당이 몇 달째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당은 이 법안을 심의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개혁 대 실용’의 논리까지 덧칠해가며 연일 옥신각신하고 있다.
“이날만큼은 표결을 해서라도 끝낼 것”이라던 21일 회의도 3시간의 난상토론 끝에 결론 없이 끝났다. 이런 식의 회의가 수 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문석호 제3정조위원장은 브리핑하기가 겸연쩍었던지 “결론을 내보려 했는데 한 쪽으로 의견을 모을 수가 없었다”며 “22일 고위정책회의를 거쳐 당론을 모은 뒤 24일 의원총회에서 확정하겠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24일 의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우여곡절끝에 한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이자가 더 붙을 상황이다. 금산법 논의가 당내정체성 공방과 맞물리면서 노선갈등의 대리전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찬반 의원들간 자존심 문제까지 얽혀있다.
이처럼 상황이 꼬인 데는 법 개정안의 직접 대상이 삼성인 탓도 크다. 경제논리로 시작된 법 개정 논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재용 상무의 증여가 문제되면서 졸지에 ‘삼성 봐주기’여부를 둘러싼 정치논쟁으로 변질돼버린 것이다.
지금 우리당 의원들은 ‘삼성을 봐주려는 재벌주의자’, ‘기업현실을 모르는 이념주의자’로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싸우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풍경이다. 논리는 다 드러나 있다. 진지하고 충실한 논의도 적정 기간을 넘어서면 눈치보기가 될 수도 있고, 감정싸움도 될 수가 있다. 그 정도로 오래 논의했으면 이제는 선택을 할 때다.
이동국 정치부 차장대우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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