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은 재임 후 4개월 만에 휴대폰 감청장비를 폐기하는데 앞장섰으며, 도청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반면, 상관인 신건 전 국정원장의 도청개입 혐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검찰로선 매우‘소중한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10월 4일, 11월 3일, 11월 11일 세 차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이씨에게서 신씨의 혐의 등에 대해 ‘의미 있는’ 진술을 받아낸 것은 3일 2차 소환 때였다. 국정원 실무 직원들과 김은성 전 차장를 강도 높게 조사해 이미 도청실태에 대한 기초조사를 마무리한 상태였다.
검찰은 실무 직원들에게서 확보한 신씨의 도청개입 혐의를 이씨를 통해 최종 확인해야 했다. 국정원장에 대한 보고는 원칙적으로 차장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조사를 받고 나오던 3일 밤 이씨는 수사내용을 묻는 기자들에게 “고생하십니다…”라고 한마디만 남기고 지친 표정으로 검찰청사를 떠났다. 검찰은 다음날 브리핑에서 “의미 있는 진술을 많이 받았다”고 수사성과가 적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이씨는 그 직후 신씨의 측근과 통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실대로 진술해 말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부인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아니냐”고 힘든 심정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며칠 뒤인 11월 9일 검찰은 신씨를 처음으로 소환 조사했다. 이후 검찰은 이씨를 한 차례 더 불러 반나절 가량 조사했고,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15일 신씨를 구속했다.
이씨의 자살 뒤 검찰은 “(이씨의 진술이) 비중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진술도 많았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씨는 검찰에서 “8국장에게서 감청장비 폐기 건의를 받아 신 원장에게 보고했다”는 등 신씨와 관련된 여러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사실은 물론 휴대폰 감청장비의 존재자체도 몰랐다”고 버티고 있는 신씨에게 이씨의 진술들은 큰 타격이 됐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씨가 신씨에게 “잘 모시지 못해 미안하다.
괴로워서 죽고 싶다”고 용서를 구했다는 주변 인물들의 전언도 있다. 한편으로 차장 부임 후 1개월 만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첩보보고를 통해 도청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를 즉각 근절하지 못해 자책했다는 말도 검찰 등에서 나오고 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검찰 수사내용 중 이씨의 자살을 불러올 만한 민감한 사안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온다. 최근 검찰이 2002년 한나라당의 도청문건 유출에 관한 수사를 본격화한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씨의 정치적 배경으로 보면 이 사건에 직접 관련돼 있을 가능성은 낮지만, 당시 국내 담당 차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문건 유출 경위를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이 대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압박을 가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수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피의자의 개인비리까지 광범위하게 수집, 이를 빌미로 수사협조를 요구하는 방식은 수사기관에서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관행이다. 반드시 가혹행위가 아니더라도 모멸적인 언사로 피의자에게 심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검찰은 하루종일 침통한 표정으로“플리바게닝(유죄협상)이나,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내밀하게 행해지는 수사과정의 진실이 외부로 속시원히 드러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이 같은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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