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은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국정원의 도청사건으로 구속 되지 않은 유일한 국정원 간부였다.
검찰은 “이 씨는 휴대폰 감청장비 폐기시점에 국정원 2차장을 지냈고 도청을 마감 시킨 인물”이라며 그의 범죄 혐의가 상대적으로 가벼움을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구속을 면한 채 지금까지 3차례 출장 조사만 받아왔다. 핵심 피의자이면서도 출장 수사만 받아올 정도로 검찰 수사에 협조적이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20일 이 전 차장의 충격적인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주변에서는 최근의 신건 전 국정원장 구속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씨는 신 전 원장의 도청개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검찰에 3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신 씨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소환 조사를 받은 후에는 신 씨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나 많이 이야기 해 버렸다. 죽고싶다”는 심정을 전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신 전 원장의 구속을 전후해서는 혐의를 부인하는 신 씨와 대질 조사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로서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을 상황이 분명하다. 결국 상관을 구속시켰다는 자책감이 이 씨의 자살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정확한 검찰 수사 과정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 씨가 구속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검찰 수사에 협조를 전제로 한 ‘플리바기닝(유죄협상)’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북 완주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감사원 사무총장 등을 거치며 DJ정부의 총애를 받아온 입장에서 자신의 수사협조가 DJ 정부에 상처를 내고 있는 상황 또한 큰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줄곧 국정원 내부에서 일해오며 정보기관 직원으로서의 강한 성품이 몸에 밴 김은성 전 차장과 달리 이 씨는 행정고시 출신의 외부 인사였다. 지인들은 그가 내성적이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도청 수사가 진행된 몇 달 동안 관련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는 언론의 접촉을 피하며 칩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한편 검찰은 이날 밤 이 전 차장의 자살소식이 알려지자 유재만 특수1부장과 김강욱 부부장 검사를 비롯, 국정원 도청수사팀 관계자들이 밤 늦게 청사로 출근해 경위 파악에 나서는 등 긴박한 모습을 보였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 이수일씨 누구인가
자살한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은 1942년 전북 완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10회)에 합격한 뒤 경찰에 투신, 30년 이상 정보 업무에 종사해 온 ‘정보통’으로 꼽힌다.
전북경찰청장과 경기경찰청장, 경찰청 형사국장, 경찰대학장 등 요직을 거친 뒤 김대중 정부 시절인 99년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내다가 2001년 김은성 전 2차장의 후임으로 임명돼 2003년 4월까지 재임했다.
국정원 2차장으로 일할 당시 국정원장은 최근 구속된 신건씨였다. 이 전 차장은 2003년 12월 호남대 제8대 총장에 취임해 지금까지 재직해왔다. 그는 국정원 도청사건 수사의 피의자 신분으로 세 차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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