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에서 얻은 철학을 잊지 않기 위해 요즘도 가끔 ‘철가방’을 잡습니다.”
‘번개’ 김대중(40)씨가 재기의 몸짓을 하고 있다. 중국음식점 배달원에서 스타 강사의 반열까지 올랐다가 10년간 남의 이름을 도용해 쓴 사실이 드러나 한때 나락으로 빠졌던 그이다. 그러나 현재 자기 이름으로 떳떳이 강연 활동 등을 재개하고 있는 김씨에겐 예전과 같은 그늘은 찾기 어렵다.
애초 김씨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S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면서부터였다. 검정 선글라스를 쓴 그와 ‘번개’ 깃발이 달린 배달 오토바이는 그 일대의 화젯거리였다.
배달 주문을 마치고 전화를 끊기도 전에 ‘자장면 왔어요’하며 노크 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이 학생들 사이에 떠돌았다. 해병대 군복 바지에 머리띠를 동여맨 깡마른 체구의 사내가 단골 여대생에게 스타킹까지 선물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는 일약 스타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속함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 등 ‘고객 최우선’을 지향하는 그의 서비스 정신에 반했다. 대기업과 방송에선 앞다퉈 그를 찾았고 외환위기 시절 정부는 그를 ‘신지식인’에 선정했다.
이후 그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 5년 동안 전국 700여 곳에서 강의를 했고 약 20만 명의 청강생이 몰려들었다. 한 달 평균 50시간 강의하는 강사가 손으로 꼽힐 당시 김씨는 80시간 강의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건 2003년 7월. 남의 이름으로 가짜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부터였다. 본명 ‘김대중’이 아닌, ‘조태훈’이란 이름을 자그마치 10년 동안 사용했다. 어려운 환경에 잦은 이사를 하면서 전입신고가 제대로 안 돼 주민등록이 말소됐기 때문이었다.
1994년 4월 그는 중국집 계산대 위에 있던 동료 배달원의 주민등록증을 슬쩍 해 그때부터 얼떨결에 조씨로 행세하게 됐다. 그는 늘 ‘고공비행’ 속에서 언제 낙하할지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결국 진짜 조씨가 수년째 밀려드는 세금 독촉장을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했고 그는 2003년 7월 18일 경기 안성시청 강연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정체가 밝혀진 김씨는 그때 “떳떳한 아빠로 살아가게 돼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두 아들이 엄마 대신 자신의 호적에 올랐다고 딸(9개월)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강의가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지금도 전국을 돌며 일주일에 서너 번 강단에 선다.
경기 의정부시청에선 공익근무요원을 상대로 ‘집단의 소속감과 높은 고객만족 사이의 상관관계’를, 강원 태백 탄광에선 광부들에게 ‘자기 직업에서의 보람’을 강조했다. 강연을 담은 오디오 북을 지난해 10월에 내기도 했다. 그는 요즘도 가끔 서울 홍익대 앞에서 외삼촌이 운영하는 중국집 배달일을 돕는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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