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진 친구와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화상 전화는 기본이다. 스마트폰 단말기를 이용해 TV 방송을 시청하고, 인터넷 검색을 자유롭게 즐긴다. 노트북PC를 이용하면 최대 12명이 화상 회의를 하면서 동영상 자료를 실시간으로 내려 받을 수 있다.
동시에 ‘구글’이나 ‘엠파스’에 접속해 참고 자료를 찾는 것도 가능하다. 집안의 가전 제품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선인터넷에 연결된 내 PC속의 자료를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받아 본다.’
이동통신 회사들이 ‘미래의 편리한 유비쿼터스 세상’을 이야기할 때 흔히 나올 법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 같은 멋있고, 깜짝 놀랄만한 유비쿼터스는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 기간에 눈 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APEC 행사장인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 KT가 ‘와이브로’(WiBro) 휴대인터넷의 시험 서비스를 선보인 덕분이다.
와이브로는 초당 4메가비트(Mbps)의 속도로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첨단 무선 통신 서비스. 상용화에 앞선 ‘맛보기’ 수준의 서비스지만, 300여대의 단말기를 이용해 7일간 2,000명 이상의 APEC 참가자들이 와이브로 서비스의 편리함을 만끽했다.
와이브로는 KT가 첨단 유·무선 통신서비스 업체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KT라는 이름에서 전화국부터 떠오른다면 이 회사가 첨단 무선통신서비스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KT 매출(2004년 기준)에서 유선전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불과하다.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신규 통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온 결과, KT는 초고속인터넷과 융·복합(컨버전스) 서비스 분야로 매출 기반을 확대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일류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초고속인터넷의 경우, KT는 미국 컴캐스트(Comcast)에 이어 세계 2위의 사업자다. 전국 방방곡곡에 뻗어 있는 KT의 인터넷 망 덕분에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T는 무선인터넷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가입자가 55만명에 이르는 ‘네스팟’(Nespot) 서비스는 전국 1만3,000곳의 서비스 지역(핫스팟)을 갖추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촘촘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와이브로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개시되면 KT는 세계적인 무선인터넷 서비스 선도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방송업계의 반대로 비록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뺏겼지만, KT는 인터넷TV(IP TV)의 기반 기술인 광대역통합망(BcN) 서비스 분야에서도 세계적 기술력을 축적했다.
KT측은 “2007년께 유·무선통합과 통신 및 방송융합, IT 솔루션 등 신규 사업에서 약 2조6,000억원을 더 벌어들여 14조원대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KT는 이를 위해 막대한 R&D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KT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매출의 2~3%를 R&D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를 매년 늘려가고 있다.
KT가 99년부터 2004년까지 R&D에 투자한 금액은 총 1조5,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액수인 2,770억원을 쏟아 부었다. 연구 인력의 수는 총 1,000여명.
KT는 9월 연구소를 각 사업 부문에 분산시키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연구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남중수 사장의 지론이다.
이에 따라 유·무선 통합 서비스와 홈네트워크, 무선인터넷 및 와이브로 등의 서비스는 컨버전스본부가 맡고, BcN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통신망의 R&D는 BcN 본부가 맡는 분업 시스템이다.
이밖에 유·무선 통신망 운영 기술 개발은 비즈니스 부문이, 소비자 수요파악과 상품 개발 등을 담당하는 마케팅 연구는 마케팅부문에서 가져 갔다. KT는 무선태그(RFID) 및 4세대 무선통신 기술 등의 선행기술 개발을 위해 별도의 ‘중앙연구소’를 두고 있다.
KT는 최근 다양한 유·무선 통신 서비스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 원더풀 라이프’의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다
. 이길주 상무는 “KT는 우리 국민들 뿐만 아니라 지구촌 사람 모두가 행복한 유비쿼터스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글로벌 톱’ 수준의 R&D 역량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 KT 이상홍 컨버전스 본부장
KT의 연구개발(R&D) 역량이 가장 많이 집중돼 있는 곳은 컨버전스 본부다. 이곳은 KT의 차세대 성장엔진인 와이브로 휴대인터넷과 인터넷TV, 홈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개발하고 있다.
또 융·복합 단말기와 텔레매틱스, 비즈니스 솔루션까지 책임지고 있다. KT ‘미래전략 2010’이 제시하는 12대 중점 사업 중 5개가 해당된다.
컨버전스 본부의 R&D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홍 본부장은 “9월 조직 개편을 통해 KT의 R&D 방법론이 크게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신 기술이 새 서비스를 창출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신 기술을 창출한다. 각 연구부서가 연관된 사업부서로 옮겨 가면서 생긴 변화다.
이 본부장은 “과거에는 최신 기술을 도입한 신규 서비스가 출시 이후 썰렁한 반응을 얻는 일이 허다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기술적 장점에만 집착, ‘아이디어는 좋은데 별 쓸모없는’ 서비스가 등장하더란 얘기다.
특히 컨버전스 본부의 경우 초고속인터넷과 유선전화 등 KT의 기본 서비스를 기반으로 갖가지 융·복합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을 맡다 보니 ‘실패작’이 속출했다.
이제는 엔지니어들이 새 서비스를 개발하기 전에 소비자들의 실생활부터 직접 연구한다. 예컨대 연구원들이 KT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이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하루 종일 벌어지는 일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기존 초고속인터넷에 더해 어떤 부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지 알아본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수요가 파악되면 여기에 필요한 기술을 KT 안팎에서 수배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든다. 음식점의 ‘전자 메뉴판’이나 KT의 약국 관리 서비스 등이 이렇게 탄생했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신규 서비스를 개발해 내려면 KT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기술의 ‘모듈화’가 필요하다. 인터넷, 융·복합단말기, 유선전화, 각종 비즈니스 솔루션 등을 마치 레고(Lego) 블록처럼 서로 쉽게 연계 가능하도록 만들어 고객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그때그때 쉽게 창출해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와이브로와 BcN에 바탕한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하면 의료· 교육· 금융· 가전과 IT와의 결합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이러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컨버전스 부문 R&D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컨버전스 본부는 이밖에 네스팟 무선인터넷에 연결된 홈네트워크 기기를 휴대폰과 PC를 이용해 집밖에서 자유롭게 조정하는 ‘네스팟 매니저’(Nespot Manager) 기술을 개발 중이다.
또 특정 지역의 지도와 건물 정보만 입력하면 휴대폰이 어디에서나 잘 터지도록 이동통신 기지국의 배치 설계를 자동으로 최적화 해주는 ‘무선망설계도구’ 소프트웨어를 개발, 일본 KDDI 등으로 부터 연간 150만달러의 사용료 수익을 거두고 있다.
정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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