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 퍼지고 있는 한국과 중국 혐오현상은 일본의 경계심리와 서양에 대한 열등감을 보여준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의 베스트셀러 만화 ‘혐한류(嫌韓流)’ ‘중국소개’의 내용을 분석하고 이같이 지적했다.
36만권이 팔린 ‘혐한류’는 “일본이 식민지 시절 한글보급에 앞장섰으며, 안중근은 어리석은 테러리스트다” “일본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 는 식의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18만권이 판매된 ‘중국소개’는 “중국 국내총생산의 10%는 매춘에서 나온다”며 중국을 “매춘 초강대국”, 중국인을 “야만성에 사로잡힌 타락한 국민”으로 그리고 있다.
NYT는 이처럼 공격적인 만화에는 최근 경제는 물론, 외교 문화 분야에서 아시아의 주도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이후 일본인들이 한국을 경쟁자로 인식했고, ‘한류’에 대한 반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NYT는 배경으로 일본의 아시아 각국과의 오랜 불화, 유럽에서 영국의 고립감과 유사한 자기 정체성, 그리고 되도록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닮으려 했던 근대역사를 거론했다. 특히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통해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려 한 19세기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사상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혐한류’에 나오는 일본인은 큰 눈에 금발, 코카서스 인종의 외양을 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인은 검은 머리에 작은 눈, 아시아인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아시아에 대한 우월심리, 서양에 대한 열등감과 동경심을 은연중에 노출시킨 이런 묘사는 1905년 러일전쟁 때도 등장했다. 당시 일본인은 ‘적’인 러시아인보다 더 높은 코와 키, 더 유럽적인 외모를 지닌 것으로 묘사됐다.
NYT는 ‘혐한류’에 대해 일본 정부, 언론,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으며, 심지어 산케이(産經) 신문은 “균형감을 잃지 않은 매우 이성적 작품”이라고 칭찬까지 했다고 전했다. 히토쓰바시(一僑)대학 역사학자 요시다 유타카(吉田裕)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민족주의자, 평화헌법 수정론자가 공중(公衆)의 논쟁을 지배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상실한 이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위로 받을 이야기를 갈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