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22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존 F 케네디가 총에 맞아 숨졌다. 범인으로 지목된 리 하비 오스왈드는 체포된 지 이틀 만에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지배인에게 살해됐고, 사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났다. 그러나 4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숱한 의혹이 풀리지 않은 채 갖가지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케이블.위성TV의 역사 전문 히스토리채널은 21~24일 오후 4~6시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추적한 8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누가 케네디를 죽였는가’를 방송한다.
2003년 ABC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0%는 케네디 암살에 관한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1%는 ‘제2의 암살범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음모론이 힘을 얻는 것은 냉전의 절정기였던 당시 복잡한 국내외 정세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건 정황에 대한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진상규명위원회는 암살범이 쏜 총탄은 모두 3발로, 마지막 한 발이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해 치명상을 입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하원 암살조사위원회는 현장에서 발사된 총알이 모두 4발로, 그 중 한 발은 다른 가담자가 쏜 것이라고 밝혔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도 정부위원회는 오스왈드가 있던 차 뒤쪽이라고 결론 내렸으나 현장 필름 등을 분석한 전문가들이나 목격자들의 주장은 달랐다. 사건 현장 분석 등을 통해 과연 제2, 제3의 범인이 있었는지 알아본다.
제2, 제3의 범인 혹은 거대한 배후가 실제 있었다면,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오스왈드가 된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비운의 죽음을 맞았기 때문. 오스왈드는 당시 아내와 커튼 재료를 사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으며, 자신이 러시아에 거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범인으로 몰렸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일 오스왈드의 행적을 따라가 본다. 또 오스왈드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40년 만에 입을 연 내연의 여인 주디스 배리 베이커도 만나본다. 그녀는 오스왈드가 당시 쿠바 카스트로 정부의 전복을 계획한 한 단체에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인간 오스왈드의 면면에 대해 털어놓는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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