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실세’ 총리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 국정을 논하며 맞담배를 한다고 청와대 비서실이 밝힌 적 있다. 총리가 스스로 골초라고 했으니 개인의 기호를 갖고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연에 관한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개인의 문제로 그칠 일이 아니다.
건강증진법 시행규칙에 의하면 대통령 집무실은 분명 금연 구역이다. 청와대 건물 전체가 금연 구역으로 선포되었다고 한다.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서민들에게는 벌금을 물리는데 대통령이나 총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법이 신분과 지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만인이 지키지 못할 법이라면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가 요구되며,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수신(修身)이라고 했다. 교육의 교(敎)는 위에서 베푸는 바를 아래가 따르는 것에서 유래한다. 베푸는 것에는 지식만이 아니라 모범이 되는 말과 행동도 포함된다.
●대통령·총리 집무실 맞담배
대통령과 총리가 금연구역인 집무실에서 맞담배를 하면서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며, 국민에게 관공서 내 금연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필자가 사는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금년 봄에 일어난 일이다. 방과 후 학교 건물 밖에서 교장이 흡연하는 것을 본 한 학생이 몰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법을 어긴 사람은 교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유인물을 돌렸다. 주법(州法)에 의하면 학교 건물 외벽으로부터 7.5m 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는데, 교장은 이 거리 안에서 흡연했으니 법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교장은 학생의 행동이 학교의 분열을 조장하고 학생들을 곤경에 빠뜨린다는 명목으로 해당 학생을 정학시켰다. 하지만 지역 언론과 시민 단체들이 교장의 처신이 잘못되었다며 학생을 옹호하고 나섰다.
며칠 후 교장은 정학 조치를 철회했고 학생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징계 처분을 받았다. 교장은 인터넷상의 사진들을 지워줄 것을 요청했지만 학생의 거부로 글과 사진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하다. 방과 후 학교 건물 밖에서 흡연한 정도의 사소한 실수를 한 교장을 사진까지 찍어 곤경에 빠뜨린 학생을 탓하며, 사제간의 최소한의 신뢰마저 없어진 살벌한 세상 혹은 무너진 공교육을 말하지 않을까?
아니면 잘못한 것이 없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교육 현장의 개혁과 교장의 권위 타파를 논할지도 모른다. 몰래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교장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돌린 학생의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장이 법을 어겼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 사건의 본질이자 전부이다.
법으로 보호를 받게 되어 있는 정보요원의 신분 누설로 시작된 ‘리크 게이트’는 부시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이라크 침공의 계기가 된 거짓 정보를 정당화시키고자 한 것이 신분 누설의 주된 동기였다.
●건강증진법 누구나 지켜야
하지만 야당이나 언론이 부시 정권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은 도덕성이나 정직성보다는 위법 행위에 있다.
법을 어겼을 때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미국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클린턴이 탄핵 직전까지 가게 된 것은 실정(失政)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거짓말로 위증을 하였기 때문이다.
폐암으로 사망한 고 이주일씨와 많은 사람이 노력한 금연 운동이 이번 일로 손상을 입지 않기 바란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라도 법을 어겼을 경우 처벌을 받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할 때 진정한 개혁은 시작된다.
김민숙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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