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7일 경주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차림만큼 4시간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에 이어 부부 동반으로 오찬을 함께 한 뒤 불국사를 둘러보며 우의를 다졌다.
두 정상이 참여정부 출범 후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현안들이 해결의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그동안 4차례 만났으나 모두 딱딱한 격식을 갖춘 실무 성격의 회담이었다.
두 정상 내외는 쌀쌀한 날씨 속에 오후 2시 35분께 불국사를 찾아 30분간 함께 거닐고 성덕대왕 신종을 타종했다. 10분 먼저 도착한 노 대통령 내외는 종상 주지 스님의 안내로 대웅전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세 차례 절을 한 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거친 부시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부시 대통령은 석가탑 앞에서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경이 나왔다”는 설명을 듣고 “오!”라며 감탄했고,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대웅전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이들은 전통차를 마시고 불국사 합창단이 부른 ‘청산은 나를 보고’란 노래를 함께 듣기도 했다.
두 정상이 회담하는 동안 권양숙 여사와 로라 부시 여사도 경주국립박물관을 함께 둘러보는 등 따로 친교 시간을 가졌다. 부시 여사는 원삼국 시대의 유리 목걸이,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관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마다 “아름답다”, “기술이 세련됐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찬에 앞서 부시 여사는 영어교육 현장을 보고싶다며 대구 가톨릭대 부설 경주 영어마을을 방문했다. 교사 출신인 부시 여사는 직접 수업에 참여했고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학생 질문에 “첫째는 가족이고 그 다음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두 정상 내외는 우정의 표시로 선물도 교환했다. 부시 대통령과 로라 부시 여사가 노 대통령 내외에게 각각 장식용 대형 유리그릇과 핸드백을 선물하자 노 대통령 내외는 각각 자수 넥타이핀과 자개로 만든 경대로 답례했다.
두 정상 내외 오찬 때는 이태식 주미대사 내외와 대통령 통역인 이성환 행정관 등 가족 3명이 동시에 참석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편 미국측의 철통 보안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측 경호ㆍ보안 요원들 가운데 일부는 지난 15일부터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주 현대호텔에 70개의 방을 잡고 투숙, 호텔 주변을 샅샅이 검색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부 경호 요원들은 기사를 작성하는 한국 기자들의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호텔 내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 폭발물 탐지견을 데리고 들어와 검측 활동을 벌여 빈축을 샀다.
호텔이나 경주 거리에서 부시 대통령의 동선은 일반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통제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부산으로 이동해 존 하워드 호주 총리, 쩐 득 르엉 베트남 국가주석, 하싸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등과 릴레이로 20분씩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경주ㆍ부산=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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