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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꿈꾸는 나무꾼 '십오야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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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꿈꾸는 나무꾼 '십오야월 '

입력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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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39)씨는 강원 평창군 오대산 골짜기에서 팔순 노부모와 5,000여 평 밭을 치대며 소설 쓰는 노총각이다. 대학 나와 수도권 어디서 카페를 차렸다가 IMF때 오롯이 들어먹고 귀향한 게 6년 전, 1년쯤 쉬자고 들어갔다가 땅에 붙들려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는 밭일이 한갓진 틈을 봐서 (어머니의 지청구를 귓등으로 흘리며) 동네 손바닥 만한 도서관에 나가 책 읽고 글을 쓴다. 1년 중 5개월이 겨울인 동네인 게 그는 다행이라고 했다. 요컨대 그는 “홀어머니 모시고 산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착한 총각 나무꾼(좋지 않은 조건만 두루 갖추고 있다)”(258쪽)인 셈이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십오야월’에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사업 망한 뒤 고향 집에 와서 늙은 사냥개와 함께 당근밭을 지키는 ‘도망치다가 멈춰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다’의 ‘그’, 10년째 문예지에 소설을 투고하는 ‘흰 등대에 갇히다’의 ‘사향노루’, 선녀의 연못을 알려줄 사슴을 찾아 금강산 관광에 나서는 ‘출가’의 ‘그’ 등이 그들이다. 하루에도 열 두 번 주저앉고 도망치고 싶도록 우중충한 처지들이다. 그 우중충함을 견디고 이겨내려는 ‘수작’들을 보자.

표제작의 ‘나’ 역시 시골 외진 집에 혼자 사는 노총각 농사꾼이다. 마을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고, 하늘엔 휘영청 십오야 달이 떴다. 동네 투전판에서 거나히 취해 돌아온 집. 괴괴해야 할 공간이 낯선 이들로 흥청흥청 요란하다. 주인 없는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노름판을 벌인 그들은, 알고 봤더니, 그의 조상들이다.

못난 후손에 대한 그들의 이어지는 질책, 이따금 튀어나오는 결코 자랑스럽달 수 없는 가족사 사설…. 끝에 그의 유일한 원군격인 외삼촌의 격려성 예언이 빛을 발한다. “이놈은 얼마 있지 않아 예술가가 될 겁니다. 왠지 아세요? 꿈을 꿀 줄 아니까요!”(32쪽)

책 속 화자들은, 표제작의 ‘나’처럼, 자주 꿈을 꾼다. 그 꿈들은 분열하는 자아의 초라한 위안이 아니라 분열을 통해 오히려 새롭게 응집하는 도전의 시도라는 의미에서 자못 건강하다. ‘흰 등대…’는 문학과 소설의 운명, 작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알레고리처럼 읽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사향노루’는 늙은 작가 지망생이다.

그는 어느 날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리지만 끝까지 피살자의 죽음을 수긍하지 않는다. “내 살가죽을 벗겨 사타구니 근처에 있는 사향을 꺼내줘야 다시 심장이 뛸까.” 잠든 듯 누운 피살자에게 그는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의 습작을 읽어준다. “긴 세월이 흘러가는 듯한 막막한 바다로 등대는 아직 희미한 불빛 한 점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 나오는 나무꾼이 이루지 못한 선녀와의 사랑을 그리다 죽어 수탉이 되듯, 노모를 홀로 두고 ‘선녀’찾아 금강산으로 출분하는 노총각 이야기인 ‘출가’의 ‘그’ 역시 출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수탉으로 변해 지붕 위에서 달을 보며 서럽게 운다.

그런 ‘그’에 대한 노모의 지청구가 뒤따른다. “‘저놈의 수탉새끼가 미쳤나! 오밤중에 지붕엔 왜 올라가 있어!’ 그는 노모의 욕설에도 아랑곳없이 눈이 퍼붓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럽게 울었다. “꼬끼오오오-!”(261쪽) ‘그들’의 겨울이 훈훈했으면 좋겠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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