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의 중요 행사 중 하나인 ‘CEO 서밋(summit)’(최고경영자 정상회의)이 17일 부산 롯데호텔서 이틀 간 일정으로 개막했다.
올해 주제는 ‘기업가 정신과 번영_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성공적인 파트너십 구축을 위하여’다. 올해 회의에는 역대 최다 참가자인 850여명이 한국을 찾았으며 이중 국내 기업인은 250여명이다
CEO 서밋은 매년 정상회의 기간 중 회원국의 대표적인 기업인들이 모여 역내 경제현안 및 세계적인 경제이슈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장이다. 올해는 이틀간 10개 정상 세션, 7개 토론 및 17개 세션이 쉴 틈 없이 열린다.
17일에는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 페루 대통령 등이 연사로 참가했으며 18일에도 5명의 정상 연설이 잡혀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APEC 커뮤니티를 향한 도전과 변화’라는 주제로 연설한다. 초기에는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았으나 CEO 서밋의 중요성이 커지며 동참하는 정상들이 점차 많아졌다.
주요 참가자로는 러시아 에너지 재벌인 가즈프롬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 시티그룹 윌리엄 로즈 부회장 등 해외 인사와 최태원 SK 회장, 삼성전자 황창규 반도체 총괄사장, 구자홍 LS그룹 회장,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등이 있다.
그러나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MS 빌 게이츠 회장,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CEO 등은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았다.
기업인들은 이번 회의에서 역내 경제 투명성 제고 등을 담은 ‘APEC 기업인 반부패 성명’ 선언을 채택할 예정인데 기업인을 상대로 서명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 각국 CEO 말·말·말
금융허브, IT허브, 물류허브….
CEO 서밋에 참여한 세계 주요 기업인들은 한국이 모든 분야에 있어 동북아의 허브가 돼 주기를 주문했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놀라운 발전에 찬사를 보냈으며,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표현했다.
윌리엄 로즈 씨티그룹 수석부회장은 “한국은 동북아 금융허브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며, 이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국제금융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3년 내에 한국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장 큰 실수가 될 겁니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업체 알리바마닷컴의 잭마 사장은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나타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이 5년 내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특히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는 “기업은 정부와 사랑은 하되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 고 비유했다.
세계적 물류그룹 DHL의 프랭크 아펠 대표는 “한국은 지리적으로 무척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으며, 공항ㆍ항만 등 기반시설도 훌륭하다” 며 “홍콩에 이어 아태지역 최고의 허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시아 시장의 변화가 급변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빨리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늦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도국제도시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의 부동산개발회사 게일인터내셔널의 존 하인즈 대표는 “한국은 정치적, 지역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만큼의 자유가 보장돼 있어 송도 신도시가 국제금융 등 동북아 허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에너지안보와 세계경제’를 주제로 한 토론에 참석한 중국석유공사 푸 청위(傳成玉) 사장은 “중국의 경제성장 때문에 에너지 가격이 오른다고 하지만, 중국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세계 평균의 60%에 불과하다” 면서 “하루빨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 CEO 서밋 연설
“합리적 틀 안에서 각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은 무역장벽을 낮춰 가야 합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17일 CEO 서밋에서 ‘중국의 경제성장과 APEC 지역경제’라는 주제로 연설하면서 이 자리에 모인 800여명의 기업인들에게 시장경제 및 개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중국의 아ㆍ태 지역 경제성장 기여에 대한 설명으로 입을 연 그는“개방 후 지난해까지 중국에 투자한 기업이 낸 이윤은 2,506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중국의 경제발전이 중국 국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많은 기회를 제공함을 뜻한다”고 말했다.
연설의 가장 많은 부분은 에너지 문제에 할애됐다. 이는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이 세계 에너지 수요를 급증하게 해 유가 상승을 불러왔다”는 일부 견해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후 주석은 이에 대해 “각국은 협력을 통해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고 대체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연 평균 1.08톤으로 세계 평균의 6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에너지 소비뿐 아니라 생산 대국이며 원자력과 풍력 발전, 바이오 에너지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후 주석은 “중국이 무역적자를 보인 10개 국가 중 6개가 APEC 회원국”이라며 아ㆍ태 지역에 중국 경제발전이 위협이 아닌, 기회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어 효과적인 경제협력을 위해 ▦열린 사고를 위한 조화로운 세계 건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무역 확대 ▦대화와 협상을 통한 갈등의 해결 ▦단결과 협력 강화 및 평화안정 유지 등 네 가지를 ‘APEC 경제의 윈_윈 조건’으로 제안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후 주석 소개는 CEO 서밋 스폰서 중 한 명인 SK의 최태원 회장이 맡았다. 최 회장은 후 주석을 “공학자 출신으로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을 이끈 젊은 세대의 새 지도자”라고 소개했다.
방한 기간 중 재계 인사와의 일정을 잡지 않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달리 후 주석은 16~17일 SK 최 회장을 비롯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회장, 정몽구 기아ㆍ현대차그룹 회장 등과 연쇄회동을 가졌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 후진타오, 국회서도 연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부산으로 떠나기 앞서 17일 오전 국회를 방문, 연설했다. 후 주석은 “우리는 이전과 변함없이 남북 양측이 대화를 통한 관계개선과 신뢰구축, 그리고 자주적 평화통일의 최종적 실현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북 양측이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이며 반도 문제가 최종적으로 남북 양측의 대화와 협상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고 일관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원수의 우리나라 국회 연설은 1995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이후 두 번째다.
후 주석은 “반도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은 가장 현실적이고 타당한 방도로서, 중국은 이를 위해 계속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 92년의 중ㆍ한 수교는 양국 관계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았다”면서 “양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친선의 소망은 양국관계 발전의 강한 원동력이 됐으며 오늘날 양국관계는 이미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권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 실망스런 '가장 만나고 싶은 CEO'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한 조사에서 국내 기업 임원들이 ‘APEC 기간 동안 가장 만나고 싶은 명사’로 뽑은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eBay)의 멕 휘트먼(49) 사장은 기자가 보기엔 ‘기대 이하’의 활동만을 남긴 채 16일 부산을 떠났다.
당초 휘트먼 사장은 14일 방한해 국내 자회사인 옥션의 보고를 들은 후 이튿날 부산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방한을 하루 미뤘고, 그에 따르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가장 중요한 자회사” 를 들르지 않은 채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이어 그는 16일 오전 이희범 산업자원부장관이 주재하는 ‘CEO 지상간담회’ 에 참여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에 이베이의 아태지역 총괄경영본부를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에 사인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가 옥션에 들르지 않은 것은 어차피 이재현 이베이 아시아지역 총괄 부사장과 박주만 옥션 사장이 동행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고, 나름대로 방한의 가시적인 성과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열린 APEC 투자환경설명회에서의 그의 특별강연은 실망스러웠다. 부산시청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800여명 청중의 박수를 받고 강단에 선 그는 20여분에 달하는 시간을 이베이에 대한 설명으로 일관했다.
이베이의 사업구조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 그의 강연은 중국 상하이(上海)의 한 개인판매자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다. 급기야 강연 중간에서부터 객석 곳곳에서 하나둘 졸고 있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이들은 왜 ‘가장 만나고 싶었던 명사’ 의 강연을 들으면서 졸음을 참지 못했을까.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CEO’(2004년 포춘지, 2005년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에게 듣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강연이 끝나고 다시 불이 켜지자 언제 그랬냐는듯 열심히 박수를 치는 청중을 보면서 이런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부산=특별취재단 신재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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