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법도청 수사 비판 이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커지고 있는 참여정부와 김 전 대통령측의 갈등은 호남 민심의 악화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지만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출신 의원들의 분위기는 최악이다. 주승용 의원은 17일 “참여정부가 호남을 버리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기류가 있다”며 “하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양형일 의원은 “국민의정부 시절 이전 도청에 관한 진실까지 밝히는 것만이 현 단계에서는 호남민심에 대한 대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동철 의원은 “우리가 아무리 참여정부와 관계없이 검찰이 한 일이라고 해도 호남정서가 받아 들이겠냐”며 “아직은 속수무책”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과의 통합논의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내년 지방선거 등을 겨냥해 호남을 감싸 안으려면 그 길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윤근 의원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며 “참여정부가 호남을 홀대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을 막기위해서도 그렇다”고 말했다. 주승용 의원도 “민주당과의 통합 문제로 돌파구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통합 문제가 공론화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이는 친노 세력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심각한 불화 요인이다.
일각이긴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입에 담는 사람도 있다.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대통령의 탈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대통령이 향후 각종 선거에서 득표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회의도 깔려 있다. 호남의 한 초선 의원은 “당이 탈당 주장을 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대통령 스스로 결정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안영근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에 출연, “지금이라도 대통령께서 무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대통령 탈당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지도부는 이날 김 전 대통령의 심기를 다독이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날 김영삼 정권 당시 ‘미림팀’ 도청에 대한 수사를 위해 공소시효 배제 입법추진 방침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송영길 이종걸 등 율사 출신 의원 11명이 임동원, 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의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구속적부심을 청구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 하지만 이 정도로 사태가 평정되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결국 통합과 대통령 탈당 문제 등을 둘러싼 친노, 비노 세력간 한바탕 생존 투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무성하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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