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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패밀리 - 저소득층 아이 51명 미디어作 출품 - 디지털 아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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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패밀리 - 저소득층 아이 51명 미디어作 출품 - 디지털 아트展

입력
2005.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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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나다. 나! 저기 화면에 말이야. 어? 수진이네. 반대쪽에 걸어가는 애, 수진이 아니야? 저기 저기! 어머….”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북적대는 전시장. 저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으레 그런 것이라는 설익은 추측일랑 말자. 해맑게 웃음 아래 감춰진 이야기가 궁금하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디지털 아트센터 나비에서 12월 10일까지 열리는 ‘디지털 아트 전시회’. 못다 한 말은 영상으로 거듭난다. 젊은 디지털 작가 13명이 5월부터 서울 봉천동, 인천, 성남, 안산, 용인 등의 5곳의 저소득층 공부방 아이 51명과 각각 팀을 이뤄 거둔 열매다.

소외 지역 아동에게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보다 쉽게 정보에 접근하는 길을 터주는 자리다. 평소에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를 만질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이 직접 기계를 다룬다. 나아가 자신이 주인공이 돼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까지 만들 기회를 누린다.

주 일회 저소득층 공부방 어린이 자원 봉사 등 불우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벌여 온 SK 텔레콤이 새로이 벌인 사업 덕분이다.

사회공헌팀의 김동영 팀장은 “문화적 혜택이 적은 소외 지역 아이들이 삶의 주인공으로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에게 캠코더 5대와 디지털 카메라 5대를 무료 대여, 그들 스스로 작동법을 익히고 마음을 담아낸 작품까지 만들어 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 한 길은 그렇게 틔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기분 나쁜 일만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딱 들어맞았다. 미술 놀이를 하는데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미안하지만 엄마를 용서하고 싶지가 않다. 남은 하루 내내 우울할 것 같다.” 인천 어깨동무 신나는 집의 최지영(가명ㆍ14)양이 사진과 함께 전시한 ‘다이어리’중 한 부분이다.

어린이 작가 51명은 자신의 일상을 뒤돌아보고 소통 가능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미디어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마음 속 꽁꽁 묻어둔 상처가 작품을 통해 조심스럽게 발화됐다.

“아이들이 겉으로는 마냥 밝게만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속에 응어리진 것이 많아요. 처음부터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을 포장하려는 경향이 짙어 작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마음을 열더군요.”

안산의 ‘예은 신나는 집’ 프로젝트를 맡아 아이들과 함께 플라스틱 캡슐 보존 작업을 한 디지털 아티스트 전기종(25)씨가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주 1회 5시간여 동안 아이들과 함께 그는 아이들의 진심을 헤아리기 위해 5개월의 작업 기간 중 절반 이상은 함께 놀고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다. 무조건적이었다.

자기 표현에 인색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마음속 응어리진 이야기를, 별 다른 경계심 없이 불쑥불쑥 쏟아내기 시작했다. “꽁꽁 묻어둔 마음속의 돌덩이를 덜어내는 작업이었어요.

아이들도 마음이 아마 한결 가벼워졌을 겁니다.” 장래 희망, 취미, 좋아하는 음식 등과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까지 함께 담은 타임 캡슐이 그렇게 만들어 진 것. 각자가 만든 꿈의 캡슐은 1년 또는 30년 등 본인이 원하는 기간 동안 집 부근 어딘가의 비밀 장소에 묻혀 있게 된다.

서울 관악중 1학년에 재학중인 김소희(14)양은 이번 프로젝트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다. 디지털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다. “5개월 동안 너무 흥미진진했어요. 사진이나 동영상 편집 등을 배웠거든요. 미술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는데,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바뀌었다면 얼마나 좋았는지 알겠죠? 장래 희망이 바뀌었을 정도니까요.”

천성민(11)군도 디지털 카메라에 푹 빠져 5월간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작동 법까지 몽땅 익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됐다. “저 자신, 가까운 친구들, 주위에서 흔히 보는 물건 등 닥치는 대로 찍었어요. 특히 제 각각인 친구 얼굴 표정 찍기가 제일 재미 있어요.” 그는 이야기 중에도 계속 뭔가를 찍어댔다.

전시회에는 지역별로 만든 그룹 작품 5점이 출품됐다.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었던 자신의 속내를 말과 글로 담아낸 작품들. 보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운다.

봉천동 ‘희망 오름’의 어린이 작가 11명은 디지털 작가 이정민 최승준씨와 함께 멀티미디어 심리 지도를 만들었다. 관객이 가까이 다가가면 지도는 ‘봉~ 봉~’하며 소리를 내고 동네의 한 장소가 확대된다. 이어 각 장소마다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영상이 펼쳐진다.

용인 ‘양지 햇살’의 작업도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사랑하는 것, 사랑해 줘야 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 소홀했던 부분을 돌아본다. 자신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그린 옷을 입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퍼포먼스를 펼친다.

전시장에는 공 CD가 판매된다. 아이들이 정성껏 만든 케이스에는 ‘판매 수익금은 전액 기부됩니다’라고 씌어 있다. 그들의 푸른 꿈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은얼른 전시장을 찾자. (02)2121-0919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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