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갔던 어느 날이었다.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국제 시장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와 피곤한 일정으로 다소 예민해져 갔는데, 거리 노점의 붕어빵, 꼬마 김밥, 호떡을 뚫고 피어 오른 향기가 내 코를 잡았다.
킁킁, 이게 뭘까? 무슨 냄새 일까? 시큼하고 달콤하면서 생기가 도는 향을 따라 걸어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포장을 쳐 쳐두시고 유자를 몇 상자 째 썰고 있는 것이었다. 유자차를 파시는 분들이었는데, 두 분이 직접 만든 다는 사실을 강조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잘 팔려서 쉴 새 없이, 심지어 장사를 하는 동안에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아무튼 그랬다.
얇게 썬 유자를 커다란 ‘다라이’에 담고 깔끔한 병에 켜켜이 쌓고 설탕을 뿌리는 과정이 그냥 길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유자 냄새가 진동을 할 수 밖에. 거짓말 조금 보태 몇 십 킬로에 달하는 유자가 즙을 내고 있었으니, 그 향기를 흠씬 맡은 나는 유자차 한 병을 샀음은 물론이고 하루 동안 쌓여 있던 피로가 확 풀려 버렸다.
● 코코넛 커리
아로마 테라피는 내 몸을 돌봐가며 살자는 ‘참살이(웰빙)’ 열풍과 함께 떠오른 새 산업 중 하나다. 일명 ‘향기 요법’이라고도 불리는데, 후각을 자극하여 심리 체계를 조절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신체적인 순환도 잡아준다는 분야다. 허브나 꽃등에서 채취한 자연 오일이 이용되며, 잘만 활용하면 식욕 억제나 우울증 해소를 비롯한 많은 질병에 도움을 준단다.
여기에서 착인, 아로마(향)가 유난히 힘을 발휘하는 요리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시장 골목에서 맡은 유자 냄새가 피로를 조금 풀어 줄 수 있었던 것이나, 극장에 들어서면 풍겨오는 팝콘 냄새가 기분을 업(up) 시켜 주는 것을 생각하면 음식에서 풍겨 나오는 아로마에 따라 맛도, 식욕도, 소화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나만의 이론이 제기 된다.
예를 들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커리’는, 그 향기 때문에 한 몫을 보는 대표적인 메뉴다. 하나만 넣어도 충분히 자극적인 향신료를 여덟 아홉 가지씩 섞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커리인 만큼 그 향기가 강렬함은 말할 필요가 없고, 그 강렬한 향기를 맡았을 때 식욕을 비롯한 감각적인 욕구들이 차례로 자극되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이국적인 향취를 더해주는 ‘코코넛’ 밀크를 조금 섞어 보자. 달콤하면서 나른한 코코넛 냄새는 일상적인 공간을 태국의 어느 리조트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향기다. 자극적인 커리에 이렇게 부드럽고 나른한 코코넛 냄새가 섞이면 아로마는 순해지고, 자연히 덜 질리게 되므로 효과는 오래간다.
이 메뉴를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먹는 식사로 권하곤 하는데, 남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거나 남편과 단 둘이 일요일 점심을 먹게 되었다면 코코넛 커리에 도전해 볼 만하다. 간간히 깨어나는 커리 냄새에 그는 침이 고일 것이고 이국적인 코코넛 향기에 기분은 느슨해지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마치 주기도문처럼!) 내가 그의 눈에 더 아름답게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
● 파인애플 소르베
앞서 권한 향신료나 열대 과일의 강렬함이 열정과 사랑을 위한 아로마를 풍겼다면 상큼한 과일류는 피로를 풀어주는 아로마라 할 수 있다. 이런 향기의 요리는 식전이나 식후에 먹는 것이 좋은데, 식전에 먹을 때는 산도를 더 높여서 시큼하게, 식후에는 당도를 높여 새콤달콤하게 즐기는 것이 옳다.
식전에 먹을 수 있는 신 맛의 대명사가 바로 ‘식전주(食前酒)인데, 주로 서양식 만찬 정도는 차려야 어울리는 하나의 ‘격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밥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목을 축일 수 있는 음료일뿐이라고 생각하면 레몬즙을 짜 넣은 진 토닉이나 엷게 탄 레몬 소주 칵테일, 혹은 시큼한 화이트 와인이나 발포성 와인 한 잔 등이 다 식전주임을 알게 된다.
신맛은, 떠올리기만 해도 혀에 침이 고이게 하는 멋진 작용을 하기 때문에 식전에 접하면 식욕 촉진에 한 몫 하게 된다. 반대로 식후에 먹는 신맛은 너무 시기만 해서는 아니 될 일. 이미 식사를 다 마친 후에 또 다른 식욕이 촉진된다면 곤란하니까.
식후에는 신맛에 더하여 단맛이 나는 메뉴를 선택하도록 하자. 생(生) 파인애플을 잘라서 속을 파낸 다음, 그 속살을 갈아서 시럽이나 화이트 와인 혹은 럼주를 살짝 섞은 뒤 얼려두면 식후에 딱 좋은 디저트가 된다. 특히나 파인애플 껍질을 깨끗이 손질하여 그 속에 담아내면 가족들이나 초대된 손님들이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고, 아로마가 더 또렷해지며 또 외관상 멋지다.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김치와 먹었다 하더라도 설거지를 마친 후 얼려 두었던 파인애플 소르베를 가족 앞에 ’짠!’ 선보이면 모두의 피로가 풀릴 것이다. 이 정도는 요리에 서툰 남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메뉴甄?한번쯤 시도해서 애인에게, 부인에게, 아이들에게 사랑받아 봄 직하다.
매운 향기로 스트레스를 풀며 아귀찜을, 후끈한 향기로 정열을 불붙이며 커리를, 바다 내음에 심신을 안정시키며 미역 샐러드를, 새콤달콤한 냄새에 피로를 풀며 파인애플 소르베를 골라 먹는 재미를 누려보자.
● 코코넛 커리
커리 분말 1봉지, 코코넛 밀크 3~5 큰술, 피망 1/2개, 양파 1/2개, 고구마 1/2개, 당근 1/2개, 버터 45그램, 고수 약간 라임 약간..
1. 팬에 버터를 달구어 같은 크기로 썬 야채를 볶는다.
2. 1이 익으면 커리 분말을 풀어 잘 저으면서 섞어준다.
3. 2가 걸쭉하게 섞이면 코코넛 밀크를 붓고 농도를 조절한다.
4. 3을 밥위에 얹고 고수와 라임을 곁들인다.
● 파인애플 소르베
파인애플 1/2통, 키위2개, 시럽 1큰 술, 럼 주 1큰 술, 민트 잎.
1. 파인 애플은 반으로 가르고 속을 파낸다.
2. 1을 채나 블랜더에 갈고, 키위도 완전히 간다.
3. 1과 2를 섞고 시럽, 럼 주를 섞어서 냉동에 얼린다.
4. 3이 반쯤 얼면 꺼내어 포크로 꺼트린 다음 위, 아래를 뒤집어 주고 다시 얼린다.
5. 4를 다시 포크로 꺼트려서 준비된 파인애플 속에 담고, 민트잎을 올린다.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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