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17일 경주 회담 결과에서 특히 시선을 끈 것은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해 본격 논의하고, 한반도를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추진하자고 합의한 대목이다.
두 사람은 공동 선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그들의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인권’이란 표현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주민 상황은 인권 문제와 인도적 지원 등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인권이 공동 선언에 포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문제는 6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잠시 거론됐으나 합의문에서는 빠졌다.
인권 거론이 자칫 북한을 자극해 6자 회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부시 대통령이 최근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의제로 채택된 것도 미국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현재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를 시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실행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25개 회원국이 최근 유엔에 제출한 북한 인권 결의안의 표결이 임박했다는 점도 고려된 것 같다.
하지만 두 정상은 이에 대한 구체적 접근방식에서 시각 차를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적극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 노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은 미합중국의 통합을 이뤄가면서 점진적으로 노예 해방을 했다”며 남북간 정치적 관계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링컨식 해법’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9ㆍ19 공동성명에 따라 직접 관련 당사국간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키로 한 것은 이미 6자회담 대표간에 이뤄진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두 정상이 직접 평화체제 전환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자는 이번 합의는 한국측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평화체제 건설은 북핵 폐기가 이뤄질 경우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평화체제 전환 논의를 위한 ‘직접 관련 당사국’은 통상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자를 의미한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인 비자 면제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외교적 수사(修辭) 이상의 무게가 있다는 해석이다.
경주=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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