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미(日美)관계가 좋을수록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각국과도 양호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소신이다.”16일 교토(京都)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 직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이렇게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마치 새로운 독트린을 선언하는 것 같았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것으로 모자랐던지 고이즈미 총리는 부연설명까지 했다. “일각에선 ‘일미 관계는 그 정도로 하고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대비해 아시아 외교를 강화하라’는 요구도 나오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마치 다른 나라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5분간의 연설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흐믓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러나 총리실이 공개한 대화록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앞으로 이 지역에서 중국이 중요한 나라(Big Player)가 될 텐데 총리는 어떻게 생각하나”고 되물었다.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미국의 입장을 완곡하게 표현한 셈이다.
이날 새삼스럽게 공표한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지상주의는 그 특유의 ‘일점돌파(一点突破)’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그에게 따라다니는 외교실패라는 비판을 대미관계로 돌파하겠다는 고집이라고 해석했다.
고이즈미류(流) 정치가 외교에도 통할까. 일본 국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하고만 잘 지내면 된다는 것은 사고의 정지(停止) 아닌가” 는 등 언론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급기야는 부시 대통령마저 일본의 미국 일변도 외교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막무가내식 자주외교가 문제가 됐는데, 요즘 일본에선 정반대 걱정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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