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이 가닥을 잡아나가면서 북한 개성공단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고려의 고도(古都) 개성. 맑은 날이면 남산에서도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여느 외국보다도 먼 땅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냉전시대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10여 개의 공장이 가동되어 수천 명의 남북 동포가 얼굴을 맞대고 일하고 있다. 개성공단이 우리 경제와 남북 관계에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개성공단을 뒷받침해주는 법적ㆍ제도적 인프라는 어떤 상황인가? 개성공단의 근거 법률은 북한이 만든 개성공업지구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개성공단의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다른 북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고, 이 법과 그 하위 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런데 아직 하위규정이 턱없이 부족하다.
개성공단의 경제 활동을 규율하는 하위 규정을 만드는 일은 한 나라의 법률체계를 새로 만드는 것과 같은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심천 경제특구의 법제를 전국에 확대하면서 개혁ㆍ개방을 해나간 것처럼, 개성공단의 법규는 북한이 시도하는 개혁ㆍ개방의 법률적 모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측의 법규도 개성공단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병역법은 산업체에 고용된 산업기능요원에게 병역특례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기능요원이 국내에서 파견근무를 할 때에는 2년을 군 복무기간으로 인정하는 반면, 국외근무를 할 때에는 6개월만 인정한다. 과연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것을 국내 파견근무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국외근무로 보아야 하는가?
한편 개성공업지구의 법규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도 토지이용권 및 건물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저당도 설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권리의 효력이 남측에서의 그것과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북측 법에 따른 권리이므로 그 효력이 부정될 여지는 없는가? 또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측 근로자에게 안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개성공업지구의 노동규정을 적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남측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야 하는가?
이러한 법률의 적용과 충돌 문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아주 혼란스럽게 한다. 어떤 법률관계에 어느 법이 적용되는지를 예측하기 어렵다면 경제활동은 안정성을 잃게 된다. 나아가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거래하는 금융기관, 투자자 등이 거래를 꺼리게 하는 중대한 원인도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이 시급히 모색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남북교류협력법제가 개성공단과 같은 대규모의 경제협력체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기본법 또는 남북경제협력법 제정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개성공단이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딛는 초기 단계라서 이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근로 환경의 열악함을 남측의 각종 지원제도를 확대 적용하여 해결해야 한다.
예컨대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이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직접 고용된 남측 근로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모기업과 근로관계를 반드시 맺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개성공단이 자체의 인프라를 갖출 때까지 남측의 정부지원제도 중 필요한 부분을 개성공단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여야 한다.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물적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법적ㆍ제도적 인프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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