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신건씨의 구속까지 몰고 온 국정원 도청 사건은 검찰의 명예회복과도 맞물린 문제였다.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도청 사실을 전면 부인했던 국정원에 속아 검찰은 올 4월 한 차례 면죄부를 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도청사건 수사를 총 지휘한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2002년 당시 서울지검 공안2부장으로서 한나라당이 공개한 도청문건에서 촉발된 국정원 도청사건을 직접 수사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도 처음부터 도청을 감추려는 당시 감청부서 직원들과 ‘숨바꼭질’을 거듭해야 했다. 명예회복의 기회는 8월5일 안기부 미림팀 실태보고를 발표한 국정원이 김대중 정부 시절 휴대폰 도청사실도 함께 고백하면서 찾아왔다.
하지만 국정원 발표에는 ‘누가, 언제, 어떻게, 누구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빠져 있어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국정원도 “관행을 벗지 못한 일부 직원들의 답습 수준이었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정공법으로 승부에 나선 검찰은 국정원 발표에서 누락된 사실관계를 하나씩 밝혀나가면서 국정원 직원들을 압박, 윗선으로 수사망을 좁혀갔다.
그 결과 8국(과학보안국) 내에 R2(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 수집팀이란 전담 도청팀이 있었고, 주요 전화국 유선중계통신망을 무더기로 끌어다 주요 인사의 휴대폰 번호를 임의로 입력하고 3교대로 24시간 내내 무작위 도청한 구체적 실태를 밝혀냈다.
검찰은 전직 8국장과 김은성·이수일 전 국내담당 차장의 입도 열었다. “국정원장들이 매일 1~2건의 통신첩보 보고서를 받아봤다”는 이들의 증언은 전직 원장 사법처리의 발판이 됐다.
마지막 장애물은 DJ 시절 핵심 실세였던 두 사람 구속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이었다. 검찰 수뇌부는 고심했지만, 수사팀은 “책임자들이 부인한다고 실무자만 처벌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원칙론을 폈다.
사상 초유의 전직 국가정보기관 총수 2명 동시 구속은 검찰이 수 년에 걸친 국정원 도청라인과의 줄다리기끝에 따낸 힘겨운 역전승이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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