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간 을사늑약 체결 100주년이 된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역사의 현장은 중구 정동 1의 11 중명전(重明殿)이다. 치욕의 현장이라 하더라도 온전히 보존해야 할 이곳은 그러나 앞뜰이 수십년간 유료주차장으로 쓰이는가 하면, 건물 보수공사마저 예산 부족으로 중단되는 등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1900년 1월 덕수궁 별채로 건립된 중명전은 2층 벽돌집으로 궁궐 안에 지은 서양식 건축물 1호이다. 한때 고종황제가 기거하기도 했으며, 1906년 황태자(순종) 결혼식 때는 외국사신을 초청한 가운데 화려한 피로연이 베풀어지는 등 외교사절 접견 및 연회장으로 사용됐다. 1960년대까지는 서울구락부라는 이름의 사교장이었다.
중명전은 이후 개인 회사에 넘어갔다가 1983년 서울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됐으며, 문화관광부가 1993년 부지와 건물을 매입한 후 부지는 지금까지 정동극장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소유주는 문화관광부 산하 정동극장, 관리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가 맡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것이다.
건물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자치단체장은 소유자가 일반공개를 하지 않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문화재의 성격에 맞는 형태로 개ㆍ보수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중명전이 주차장으로 사용된 지 10년이 넘도록 문화관광부에 용도변경을 요청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근 경복궁 내에도 주차장이 있는데 중명전 앞의 주차장을 부당하다고 할 명분은 없었다”며 “행정명령을 내려 주차장 철거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해야 해 절차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명전은 정동극장측이 근대역사자료관으로 꾸미기 위해 내부 공사를 하다가 예산부족으로 중단한 상태다. 정동극장 관계자는 “100년이 넘은 건물이기 때문에 보수공사를 해야 하지만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전체 사업비 30억원에 크게 모자라는 6억원만을 지원한 후 나머지는 올해와 내년 예산에도 편성되지 않아 언제 공사가 재개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중명전 건물 내부는 오랜 기간 일반 사무실로 사용되면서 구조나 인테리어 등 예전 모습이 크게 훼손됐다”며 “서울시가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덕수궁에 편입해 사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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