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여야 정치인, 대통령 친인척, 경제인, 언론인 등 주요 인사 1,800여명의 휴대폰 번호를 감청장비에 입력해 24시간 무차별 표적 도청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5일 구속 수감된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의 영장 범죄사실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적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두 전 원장은 매일 2회씩 국정원 내 감청부서인 8국(과학보안국)으로부터 A급으로 분류된 통신첩보 6~10건을 보고 받았다. 통신첩보는 ‘8국’ 및 ‘친전(親展)’이라고 기재된 봉투에 밀봉된 상태로 전달됐으며, 보고서엔 감청시간도 기재돼 있었다.
검찰은 구속영장에 박재규 통일부 장관을 포함한 통일부 고위공무원의 대북지원 관련 통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인적쇄신 요청과 관련한 한나라당 의원과 신문기자의 통화, 의약분업사태와 관련한 신상진 당시 의사협회 간부의 통화 등 추가 도청사례도 적시했다.
검찰은 이날 수사 브리핑에서 두 전 원장이 재직 당시 도청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청와대 등 외부에 보고했는지도 수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장 윗선에 대한 수사계획에 대해 “차근차근 수사과정에서 검토할 사항이지만 해야 할 것은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는 “두 전 원장이 직ㆍ간접적으로 도청에 관여 또는 묵인한 점이 인정되고, 신씨의 경우 증거인멸도 시도했다” 며 이날 밤 10시30분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득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두 사람이 비록 국가에 많은 공헌을 했고 임 전 원장의 경우 70살의 고령이라는 점을 참작했지만, 국가 기관이 불법 행위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은 중대한 사안이어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신씨와 임씨는 이날 오후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외사나 대공 분야 등 합법적인 내용의 통신첩보를 보고 받은 적은 있으나 재임 기간 도청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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